외국인 '셀 코리아'로 8년만에 순채무국 전환

9월말 현재 순대외채권 마이너스 251억弗
만기도래 임박 장기외채 2,271억弗등
1년내 갚아야 할 돈 외환보유액에 육박
경상흑자·외국인 매도 둔화 '그나마 희망'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 행진이 우리나라를 8년 만에 순채무국(해외로부터 받을 돈보다 갚아야 할 빚이 많은 국가)로 바꿔놓았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쪼그라드는데(경상수지 흑자 감소ㆍ적자) 외인들은 자꾸 돈을 갖고 빠져나간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들어가기 직전인 지난 1997년이 꼭 이랬다. 순채무국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것도 국가 신용도에 좋지 않지만 더욱 좋지 않은 신호는 1년 안에 갚아야 할 돈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단기 외채의 덫에 걸려 IMF의 손길을 빌려야 했다. ◇‘셀 코리아’ 행진이 직격탄=한국은행이 28일 내놓은 ‘국제투자대조표(잠정)’를 보면 9월 말 현재 대외 채권에서 대외채무를 뺀 순대외채권은 마이너스 251억달러로 석달 전 17억달러 플러스였던 것에 비해 268억달러나 줄었다. 순대외채권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0년 1ㆍ4분기(-58억4,000만 달러) 이후 처음이다.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나라가 갖고 있는 순대외채권은 ‘대외체력’의 기준점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1997년 순대외채권이 -680억달러까지 이르렀다가 경상수지 흑자 덕에 2000년에는 플러스로 돌아섰다. 2006년 1ㆍ4분기에는 받은 돈이 갚아야 할 돈보다 1,300억달러 이상 많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의 고공행진이 멈춘데다 은행들이 단기 외채를 앞 다퉈 끌어당기면서 지난해에는 355억달러까지 줄어들었고 급기야 순채무국의 오명을 쓰게 됐다. 순채무국으로 돌아서게 한 결정적인 요인은 외국인들이었다. 외국인들의 주식 투자는 통계상 채무로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인이 국내에서 주식을 팔아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해외로 나가면 채무는 줄어들지 않으면서 국내 외화자산(달러)이 줄어들게 한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올 3ㆍ4분기 동안 주식과 파생금융상품 등 이른바 ‘지분성 투자자산’을 280억4,000만달러어치나 팔아 떠났다. 공교롭게도 순대외채권 규모인 -251억달러와 비슷하다. ◇1년 내 갚아야 할 돈 너무 많다=대외채무가 많다고 해도 장기물이라면 천천히 갚아도 되기 때문에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1년 내 갚아야 할 채무(유동외채)가 너무 많다면 상황이 확 달라진다. 국제금융시장이 요즘처럼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해외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주머니도 빈 마당에 만기를 연장해줄 리 없기 때문이다. 한은 통계를 보면 9월 말 현재 유동외채, 즉 1년 이내의 만기로 빌린 단기 외채에다 장기 외채 중 만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을 채무는 2,271억달러에 이른다. 석달 전에 비해 62억달러나 늘었다. 더욱 큰 문제는 유동외채가 어느덧 외환보유액의 턱밑까지 올라왔다는 점이다. 9월 말 기준으로 유동외채 규모는 외환보유액(9월 말 기준 2,396억달러)의 94.8%에 이른다. 지난해 말 75.8%에서 3월 말 81.8%까지 올라가더니 6월 말 85.6%까지 상승했고 9월에는 90%를 넘어선 것이다. 나라 곳간에 쌓아놓은 달러나 외국에 갚아야 할 돈이 비슷해진 셈이다. ◇경상수자 흑자ㆍ외인 매도 주춤… “그나마 희망”=통계상 수치만 본다면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에 순채무국 전환은 가장 좋지 않은 뉴스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 흐름상으로는 아주 비관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경상수지의 기조가 조금은 바뀌었다. 경상수지는 지난달 49억1,00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월간 단위로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정부는 11월에도 10억달러 이상 흑자를 내는 데 이어 12월에도 플러스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 대규모 적자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갚아야 할 돈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당장 은행들은 지난달에만 201억달러의 단기 외채를 순상환했다. 갚은 규모로만 따지면 사상 최대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소식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헤지펀드를 비롯한 외인들의 ‘셀 코리아’ 행진이 끝날 조짐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한은의 ‘순채무국 전환’ 발표에도 시장이 그리 충격을 받지 않은 것은 이런 경제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 전체가 워낙 살얼음판인지라 이런 낙관적인 흐름 속에서도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는 터. 순채무국이라는 꼬리표가 영 찝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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