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의 총잡이 가을 스크린을 쏘다

‘오픈 레인지’ ‘황야의 마니투’등 28일 개봉

‘오픈 레인지’

‘황야의 마니투’

창 넓은 모자를 멋스럽게 쓴 보안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모르게 삐딱하게 문 시거. 한 손에는 말 고삐를, 다른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드넓은 사막을 달리는 모습. 주인공은 늘상 게리 쿠퍼나 존 웨인 정도 되겠다. 현란한 총솜씨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미국 서부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를 끝으로 ‘박물관 유물’로 박혀있던 서부영화가 ‘뜬금없이’ 가을 스크린에 등장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오픈 레인지’와 ‘황야의 마니투’가 그것. ‘오픈 레인지’가 미련스러울 정도로 정통 서부영화의 적자(適子)임을 내세운다면 ‘황야의 마니투’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엽기적인 웃음 코드를 보여준다. 극장가를 가득 메운 달콤한 멜로영화가 영 불편한 관객에겐 오랜만에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다. 흔히들 사극이나 시대극에 복고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사실 우리에겐 미군이 건네준 초콜릿과 껌이 더 옛 기억을 자극하기도 한다. ‘오픈 레인지’는 서부영화의 장르를 충실히 따른 작품. ‘늑대와 춤을’ ‘보디 가드’로 90년대 초반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였던 케빈 코스트너가 또다시 제작과 감독, 주연을 맡았다. 그가 제작에 눈길을 돌린 후, 지난 10년간 쓴 맛만을 본 그가 2,600만달러에 달하는 제작비의 절반을 댔다. 그의 제작에 대한 미련스러울 정도의 애정이 이젠 안쓰러울 정도. 영화는 터프한 남자와 미국 남부 숙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며 이방인의 등장, 명확한 선악 구도의 갈등과 결투라는 정통 서부극의 틀을 따른다. 개척시대 서부 대초원, 보스와 찰리(케빈 코스트너) 등 카우보이 일행이 우연히 들른 마을에서 위험에 처한다. 보안관이 타락한 이 마을에서 사람들은 숨죽여 살고, 일행 중 한 명이 살해당하자, 이들은 마을 농장주 패거리에게 복수를 선언한다. 서부영화에 향수를 갖고 있는 올드팬이라면 오랜만에 나온 정통 서부영화가 반갑겠지만, 공식대로 뻔하게 전개되는 영화가 과연 2005년 관객에게 먹혀들지는 미지수. 케빈 코스트너의 주름살은 여전히 어색하게 다가오고, 존 웨인이 풍겨내던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도 찾기 힘들다. ‘황야의 마니투’는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독일영화. “독일에서 서부영화가 웬말?”라는 반응이 나올 법 하지만, 영화는 서부영화의 외피만을 빌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다 갑자기 음주단속에 걸리는 가 하면, 황무지에 사는 주인공은 분홍색에 집착하는 게이다. 엄숙하게 무게를 잡는 악당 보스는 CM송에 맞춰 춤을 추고, ‘웃기는 토끼’ ‘미친 젖소’ 등 ‘늑대와 춤을’식의 등장인물 이름들은 엉뚱하기만 하다. 2001년 제작된 이 영화는 독일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무려 1,200만명의 관객을 모으는 대박을 터뜨렸다. 배경만 보면 진지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엽기적인 상황이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한다. 다만 장르영화 가운데 가장 국경의 벽을 넘기 힘든 ‘코미디’라, 국내 관객과 다소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건 감안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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