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3대 신용평가회사의 하나인 무디스가 11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두 단계나 낮췄다. 이 같은 평가는 현재 A3등급인 한국의 신용등급 자체를 낮출 수도 있음을 예고한 것이어서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될 위험에 놓였다.
무디스는 지난 달 실사단을 한국에 파견해 신용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실사단의 관계자는 한국의 신용에 문제가 없으며 당분간 신용등급 전망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급작스레 신용전망을 낮춘 배경이 다소 의아하긴 하지만 실사단 파견이 `이상징후`에 대한 대응조치라는 점에서 전혀 예상외의 결과는 아니다.
무디스는 이번 신용등급전망 하향조정 이유가 북한핵 문제에 있음을 명백히 했다. 북한의 핵비확산조약 탈퇴,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추방, 영변핵시설 재가동 등 북한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가 과거보다 과격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전에 주로 경제정책의 오류와 같은 국내적인 요인을 신용평가의 기준으로 삼았으나 이번엔 외부적이고 경제외적인 요소를 국가위험도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북한핵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가 유엔안보리 상정을 추진하는 등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데다, 남한의 힘으로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다. 미국이 현재 준비 중인 이라크와의 전쟁이 끝나면 다음은 북한핵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예상이다. 이라크전쟁 이후에도 한반도에는 전쟁의 위험이 계속된다는 얘기다.
무디스의 평가도 그 같은 전망에 바탕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의 국가위험도는 국내외 시장에서 이미 반영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이어져 주가는 속락하고 있고, 외환시장에선 원화가치가, 해외채권시장에선 한국의 채권가치가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적으로는 정권교체기를 맞아 정치공백이 지속되는 가운데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및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ㆍ외적인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새 정부의 대미 특사로 파견된 사람은 `북한 핵 선택론`이라는 터무니 없는 발언으로 미국여론을 자극했는가 하면, 청와대의 관계자는 무디스가 신용평가를 낮추려고 하는 것을 정부가 뛰어서 막았다고 경솔한 발언을 했다. 정치권은 대북송금사건에 대한 공방만 일삼고 있고, 대통령은 대북정책에서 잘못된 점을 시정한다는 자세로 대북송금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함에도 국익을 핑계로 외면해 오히려 국익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무디스의 하향평가는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현 정부ㆍ차기정부ㆍ정치권은 총체적으로 나사가 빠져 있는 국정을 조속히 추스려야 한다. 이 대로 가다간 한국의 신용하락은 막을 길이 없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