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요즘 업체별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누구는 1차벤더로 계속 살아남겠지만 누구는 1차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2차로 떨어질 것』이라는 확인되지않은 얘기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기아를 인수한 이후 대대적인 부품업체 정비에 나선 이후에 생긴 일이다.이들의 근심은 현대가 아닌 기아에 납품을 해왔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현대가 부품업체 평가를 하면서 계열을 따지지 않고 품질과 가격만으로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냐는 것이다.
엔진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자동차시장이 살아나서 공장은 잘 돌아가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마냥 신나할 수 만은 없는 형편』이라며 『기아에만 전량 납품해 온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그동안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완성차업체에 얽매여있는 전속적·수직적 계열구조 때문에 파생된 것이다. 현대·대우·기아중 1개 모기업에만 납품하는 1차 대형 부품업체는 전체 928개업체(98년) 가운데 55%인 510개사에 달하고 있다. 2군데 납품하는 회사까지 합하면 80%나 된다.
부품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폐쇄적 납품구조를 고쳐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왔다. 완성차회사 사장들이 모여 방안을 논의했지만 말잔치로 끝났을뿐 관행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글로벌소싱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복수납품도 힘든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 5일 완성차업체들이 「종속적인 납품관행 개선」을 결의한 것은 기대를 갖게 한다. 정부의 등쌀에 떠밀려 마지못해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 부품업체들의 바램이다.
자동차 부품산업의 문제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부지런히 회사를 발전시켜 자체 개발능력을 갖고 있는 회사도 있지만 더 많은 수가 작고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갖다주는 설계도면을 보고 그대로 만들어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도어용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K사. 연간 매출액은 40여억원 가량되는 이 회사의 P사장은 이렇게 진단한다. 『국내 완성차회사도 이미 글로벌소싱에 들어갔고 부품발주를 경쟁입찰로 선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자체 설계능력을 가지야만 살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매출 50억원도 안되는 지금 상태로는 연구개발은 요원하다. 완성차업체들이 공동으로 부품연구센터를 만들어 우리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곳에서 제품이 개발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기술력이 없으면 완성차업체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6일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중 설계능력을 가진 업체의 비율은 30%에 머물고 있다. 일본이 70%인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연구개발 투자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액의 1.4%로 조사돼 있다.
업계는 이런 상황에서 산업자원부가 부품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한데 대해 기대와 반신반의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고문수 상무는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정부가 사고의 전환을 꾀한 것같아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일이 아니고 강력한 시행이 필요했던 것인 만큼 정부의 의지와 실질적인 지원책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高상무는 특히 『부품업체 전문·대형화와 복수납품체계 정착 등은 조합에서도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들로 여기에는 완성차업체가 반드시 참여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제시한 방안가운데 부품업체들이 자유롭게 애프터서비스·보수용 부품 유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부품판매전문회사를 설립할 경우 자금과 운영을 지원키로 한 것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순정품이라는 이름하에 사실상 부품유통이 완성차업체의 규제아래 놓여 있었다』며 『애프터마켓을 나갈 수 있게 되면 매출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좋아했다.
부품업체간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생기는 유휴자산을 매각할때 특별부가세 면제를 해주기로 한 대목이나 중소기업범위에 대한 유예기간 연장조치도 실질적인 조치라는 평가다.
반면 자동차 부품의 수출산업화를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지원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미국 자동차 빅3가 요구하는 기준인 QS9000 인증을 받은 창원의 한 업체 대표는 『수출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이 인증을 딴 것이지만 1억원이상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며 『중기청에서 700여만원이 지원되긴 했지만 그정도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차제에 자금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지원요건을 더 완화해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형준기자HJ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