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사고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도 고양시내 대형 쇼핑몰을 갖춘 종합 터미널에서 불이나 6명이 숨지고 4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사고발생 원인과 인명피해, 당국의 대처 과정 등을 보면 세월호 참사의 판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 사회 곳곳은 여전히 안전에 무감각한 셈이다.
화재는 26일 오전9시2분께 터미널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대형마트 옆 푸드코트 매장에서 인테리어 공사 중 일어났다. 인부 몇 명이 용접작업을 하던 중 용접 불씨가 가연성 인테리어 소재에 옮겨붙은 뒤 삽시간에 번졌고 독성 연기는 건물 중앙에 위치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지상 2층의 매표소 공간 등으로 순식간에 번졌다. 소방인력이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20여분 만인 9시29분께 화재를 진압했으나 이미 많은 사망자를 낸 뒤였다.
문제는 이번 화재도 안전수칙만 제대로 지켰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보통 공사현장에서 용접작업을 할 때는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점을 감안해 용접 불꽃 방지포를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특히 현장에서는 푸드코트 입점을 앞둔 점포의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스티로폼 등 가연성 자재가 다수 널려 있었는데도 불꽃 방지포 설치 없이 용접작업을 강행하다 화를 부른 것이다. 서울시가 발주한 공사장 안전을 감독하는 도시기반시설본부의 한 관계자는 "공공 공사장의 경우 용접작업시 불꽃이 튀는 위험을 막기 위해 방지포 설치를 기본적으로 하도록 돼 있다"며 "그러나 민간 공사장의 경우 이 같은 최소한의 안전수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지하 5층, 지상 7층 규모의 종합 터미널에는 하루 최대 250대의 버스가 운행되고 이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몰리는 등 유동인구가 집중된 곳이다. 특히 이 건물에는 대형마트나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이 들어가 있는데도 내부 공사 현장에서는 기초적인 안전수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이에 대한 감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고 선박을 사와 제멋대로 증축하고 또 이를 관리감독하는 기관들도 눈감아 주는 식으로 안전규정을 어기다 300여명의 애꿎은 희생자를 낸 세월호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입주해 있는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개장 시점이 화재가 난 9시이다 보니 손님이 덜 몰리는 시간이어서 대규모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만약 화재가 손님들이 붐비는 점심 시간대나 저녁 시간대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참사가 또 날 뻔했다.
현장의 안전 매뉴얼도 허술하기 짝이 없이 관리됐다는 게 또 증명됐다.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내려지도록 설계된 방화셔터가 이번에도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장 소방 관계자는 "지하 1층~ 지상 1층이 공사 중인 관계로 이 구간에는 방화셔터를 작동하지 않게 놔둬 연기가 쉽게 확산돼 피해를 더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세월호 이후 정부나 국회, 시민단체 등 모든 곳에서 '안전'을 외쳐댔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안전 매뉴얼도 모르고 이를 지키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게 다시 확인됐다.
사고로 연기가 건물 내부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서도 대피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주부 장모씨는 "터미널 매표소로 올라가는데 에스컬레이터에서 검은 연기가 나더니 갑자기 불이 확 올라왔다"며 "'뛰어. 대피해"라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그 자리에서 짐을 내려놓고 애들만 데리고 대피했다"고 급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장씨는 "사이렌 소리만 들리고 대피방송은 안 들리고 불을 본 사람들이 질러대는 소리만 가득 차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의 사망자 수 발표 혼선도 세월호 판박이었다. 이날 오후2시 현재 사망자 6명, 중상자 5명을 포함해 총 4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당국은 사망자 수 파악에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켜보는 시민들의 분통을 터지게 했다. 세월호 사고 직후에도 컨트롤타워라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탑승자와 사망자 수 집계를 놓고 수차례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국민들의 속을 긁어놓더니 이번에도 당국의 미숙한 대처는 전혀 고쳐지지 않아 시민들의 불안감만 키운 꼴이 됐다.
경기소방재난본부는 이날 오전11시20분께 종합터미널 화재로 7명이 숨지고 20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10분 뒤 경기 일산소방서는 현장 브리핑에서 사망자 수를 6명으로 발표했다. 소방본부 상황실과 현장에서 파악한 사망자 수가 달랐다. 오후 1시께 본부는 사망자 수를 6명으로 정정했다. 유독가스를 마셔 위독한 1명을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이송, 숨진 것으로 파악됐으나 심폐소생술(CPR)을 통해 호흡이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20여분 뒤에는 일산 백병원으로 이송된 1명이 같은 응급처치로 살아났다며 사망자 수를 5명으로 또 줄여 발표했다. 그러나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CPR로 호흡을 되찾은 1명은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 판정을 받았다. 소방본부는 다시 사망자 수를 정정해 오후2시 현재 6명이라고 밝혔다. 그 사이 부상자 수는 늘어 4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태에 빠진 5명의 경우 50대 이상의 고령자들이 많아 추가 사상자가 나올 수 있어 다시 당국의 허술한 대처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