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사설/12월 19일] 버냉키의 대담한 도박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16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0.25%로 낮췄다. 벤 버냉키 FRB 총재가 경제학자가 아닌 도박사로 비쳐질 만큼 대담한 승부수였다. 이와 함께 FRB는 ‘양적 완화 정책’도 같이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채나 은행 자산을 직접 사들여 대출과 투자를 촉진시키겠다는 의도다. 또 디플레이션에 대비함으로써 경제의 수축을 막겠다는 뜻도 있었다. FRB의 금리인하 발표 이후 미 증시가 급등한 것을 보면 시장도 FRB의 이 같은 행보를 반기는 듯하다. 하지만 앨런 블라인더 전 FRB 총재도 지적했듯 시장이 FRB의 시도를 지금 어떻게 평가하든 결국은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 마련이다. FRB는 지난 십여년간 시장에 과잉 유동성을 방치했으며 부동산 거품을 일으켰다. 그리고 2007년에는 금리를 마구 인하해 원자재 거품을 부추겼다. 이제 FRB는 또 다른 모험을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자신들을 믿어달라고 외치고 있다. 만일 어느 신용기관에 돈이 부족하다면 FRB가 달려가 그들의 자산을 매입할 것이고 이는 신용경색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FRB는 이미 모기지 금리 하락에 기여했다. 그러나 지금 경제의 문제는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불안감과 불확실성이다. 은행ㆍ소비자ㆍ기업이 너나 할 것 없이 땅굴을 파고 숨어 들고 있다. 현금을 쥔 채 최악의 시기가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며 말이다. 그러는 동안 세계의 투자자들도 리스크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차입을 축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FRB는 수동적인 조치만을 취해왔다. 경제에 진짜로 필요한 것은 FRB가 제공하는 유동성이 아니라 신뢰의 회복이다. 미 정부는 대규모 감세나 적극적인 금융업계 인수합병 등을 추진해야 한다. FRB는 경기회복 이후 시장에 풀린 유동성을 다시 거둬들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실업률 등 뒤늦게나 경기를 반영하는 지표에 의존하지 말고 보다 앞서 경제상황을 예측해주는 지표에 의지해야 한다. 세계의 투자자들이 버냉키 총재의 판단을 믿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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