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의 심장인 주롱석유화학단지는 글로벌 석유화학기지를 목표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주롱섬 서쪽 부두건설 공사현장 너머로 쉘과 BP의 웅장한 공장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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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롱석유화학단지 서쪽 간척지에 SK㈜ 등이 참여한 석유저장기지가 한창 건설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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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VISA)를 보여달라는 택시기사의 말에 당황했다. ‘뭘 잘못했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왜 택시기사가 비자를 보여달라는 거야’ 잠시후 친절한 말레이계 택시기사의 설명에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9.11 이후 목적지에 다 와서도 내리지 않고 두리번 거리는 사람은 신고해야 한다. 특히 주롱섬은 택시로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내 실수다. 공업단지라면 시내에서 당연히 멀리 떨어져 있을거라는 선입견에 시간 계산을 잘못한 실수다. 남은 시간동안 여기저기를 둘러보겠다는 욕심으로 택시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으니 의심을 살만도 하다.
싱가포르 시내에서 서쪽으로 달려 도시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주롱(Jurong) 게이트. 외형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생겼지만 기관총을 든 무장경찰이 일일이 검문을 하고 차에서 내려 몸 수색을 받아야 하는 것까지 국경검문소인지 헷갈린다. 하긴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가 터졌을때는 완전 무장한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됐다고 하니 삼엄한 경비가 이해는 된다. 게이트 앞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관관객들에게 유명한 주롱새공원이 나오지만 고가 다리를 건너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렇게 많던 숲이 사라지고 갑자기 거대한 플랜트가 나타난다.
사진을 찍을 욕심에 뒷좌석에 감춰뒀던 카메라는 철저한 검문에 여지없이 걸렸다.
싱가포르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주롱(Jurong)석유화학단지. 수백개의 굴뚝에 불을 뿜어내는 스텍(stack)까지, 불과 몇 분전에 봤던 도시 국가의 이미지가 공업국가로 바뀐다. 깔끔하게 정돈된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칼텍스, BP, 쉘 등 메이저급 정유ㆍ석유화학 회사들의 공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곳은 싱가포르 정부의 체계적인 외자유치 노력의 산물이다. 93년 싱가포르 정부가 중기적 제조업 전략으로 내세운 ‘매뉴팩처링 2000 계획(M2000)’은 싱가포르가 원유 중개ㆍ수송의 기지인 점을 활용해 석유화학 관련 다국적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주롱섬을 아예 다국적기업인 쉘(Shell)에 통째로 불하했다. 10년 동안 세금도 전혀 받지 않았다.
현지 안내인은 “주롱유화단지는 처음 조성할 때부터 글로벌 기지를 겨냥한 곳”이라며 “여기 입주하는 다국적 기업들에겐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우선 부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아시아 경제의 핵심 거점으로 빠르게 부상하면서 싱가포르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며 “이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외국기업 유치에 더더욱 공을 들인다”고 귀띔했다.
국가 경제의 위기 상황이 싱가포르를 보다 더 친기업(친 다국적 기업)화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주롱석유화학단지는 면적만 901만평. 현재 미국기업 756개, 일본 586개, 유럽 169개사를 포함해 2,0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곳이 외국기업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수심이 깊고 태풍이 없는 항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싱가포르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정책 때문이다. 평균 수심 15~40m는 초대형 유조선 VLCC도 접안을 할 수 있다. 국내 정유공장들이 바다 위에 배를 띄우고 파이프를 연결해 원유와 석유제품을 하역하는 부유 시스템인데 반해 이곳은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여기다 M2000이후 추진된 화학산업 육성정책은 석유정제, 석유화학, 특수화학품, 의약품 등 넓은 의미의 화학산업을 모두 싱가포르라는 공간 안에서 이뤄지게 만들었다. 토지를 정부가 소유한 만큼 100년 정도의 임대조건과 평당 64달러 정도인 임대료는 세계 어느곳 보다 매력적인 조건이다.
찬쉬에륀 칼텍스 프로젝트 매니저는 “싱가포르가 정유ㆍ석유화학에서 매력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잘 갖춰진 인프라와 메이저 석유회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보 수집이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롱석유화학단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주롱강을 끼고 서쪽은 석유물류기지 건설이 한창이다. 간척지에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콘크리트 말뚝을 박아 지반을 안정시킨 이후 석유제품 저장시설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초 엑손모빌이 에틸렌 생산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쉘도 푸라우 부콤 공장 옆에 100만톤 규모의 정제 공장을 신설계획을 밝혔다.
SK㈜가 만들고 있는 석유 물류기지인 호라이즌 터미널 공사도 간척지에서 진행중이다. 37도를 넘는 더위속에서 소금기가 빠진 땅위에 탱크를 용접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10월 완공될 호라이즌 터미널은 530만배럴의 석유제품을 저장할 수 있는 탱크와 입ㆍ출하 설비인 부두를 건설할 예정이다. SK㈜는 이를 통해 석유물류네트워크 구축하고 ‘아태지역 석유 트레이딩 분야의 메이저 플레이어(Major Player)’로 발돋움 할 계획이다.
허진 SK㈜ 싱가포르 법인장(상무)은 “싱가포르의 석유화학사업은 매출 크기만큼 이익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며 “그보다는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규모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주롱석유화학단지는 싱가포르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