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면 신사를 떠올리듯 프랑스 하면 ‘톨레랑스’를 떠올린다. 프랑스 국민이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톨레랑스 정신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서로 타협하지 않고 파국으로 돌진하는 사회갈등이 야기될 때마다 우리 지식인들은 톨레랑스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 프랑스에 관한 소식들을 보면 톨레랑스 정신이 실종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10월 말 프랑스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소요사태는 차별적인 이민자정책이 빚은 결과였다. 최근에는 권리를 뺏기지 않으려는 학생 측과 새 노동법을 강행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회복하려는 정부 측이 서로 조금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 프랑스는 이제 다른 이를 폭넓게 이해하는 톨레랑스의 가치를 포기한 ‘앵톨레랑스’의 나라가 된 것 같다.
한국과 프랑스간 항공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양국 관계자간 회담이 다섯 차례나 진행됐으나 6개월 이내 재논의라는 허무한 결과만 남긴 채 종료됐다. 한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복수항공사 취항을 요구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EU) 측의 국적항공사 지정방식(EU clause)에 따라 양측간 협정이 EU 전체 범위로 확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한국 항공사의 복수취항을 허용할 경우 EU 회원국 소속의 한 항공사가 한국에 취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파리 노선의 경우 지난 2005년 탑승률 80%, 탑승객 수 33만명으로 이미 포화상태다. 이 노선을 이용하는 탑승자의 불편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서울~파리 노선의 높은 수요와 탑승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주장하는 복수항공사제 도입 조건이 충족될 수 없도록 하계에는 주 7회, 동계에는 주 5회를 운항하며 감편하거나 항공기 기종 축소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공급을 통제했다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는 이미 대만ㆍ일본ㆍ중국ㆍ베트남ㆍ인도ㆍ필리핀ㆍ말레이시아ㆍ태국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는 아무 조건 없이 복수항공사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유럽국가인 독일의 경우 84년 우리 국적 항공사가 취항한 지 11년 만인 95년에, 영국은 88년 첫 취항 후 2년 만인 90년에 복수항공협정을 체결해 복수취항을 허용한 사례를 비교해보면 프랑스 정부의 항공외교 차별화 정책은 명백하다. 73년 체결된 단수항공사제도를 우리나라에만 적용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톨레랑스 정신이 실종됐기 때문인가.
그러나 항공협정이 무산된 것을 프랑스 정부의 톨레랑스가 실종했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입맛이 개운치 않다. 한국고속철도(KTX)의 최종 입찰자로 프랑스 테제베(TGV)가 결정됐지만 그들이 이에 대한 대가로 제시했던 외규장각도서 반환은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로콥터와 에어버스 기종 도입으로 프랑스에 막대한 이익을 줬지만 우리 정부는 복수항공제 취항과 같은 협상조차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프랑스의 오만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프랑스와의 항공협정 파기나 에어프랑스의 자회사와 다름없는 KLM의 출입금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 서울~파리 노선에 복수항공사제도를 도입하는 데 대한 협상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여타 국가의 복수취항을 허용하면서 우리나라에는 허용하지 않는 이중적인 잣대가 다시는 등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프랑스를 찾는 우리 국민이 항공을 쾌적하게 이용하고 국익이 손실되지 않도록 한국ㆍ프랑스간 복수항공사 취항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앵톨레랑스의 프랑스를 원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