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부의 모럴해저드지난 98년 초 이헌재(李憲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이번에 공적자금조성에 동의해 주신다면 추가조성없이 구조조정을 확실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2년6개월이 지난 22일 진념(陳稔) 재정경제부 장관은 똑같은 얘기를 했다.
『국민들에게 죄송합니다. 이번 한번만 공적자금 추가조성에 동의해주신다면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받는 한국경제·주식시장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투입된 공적자금(공공자금 포함) 금액은 109조. 정부는 이같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고도 모자라 다시 40조원의 공적자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돈이 전부 없어지는 돈은 아니다. 그러나 이자와 예금대지급 손실 등 재정(국민의 세금)에서 직접 부담해야 할 돈은 45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45조원이라는 돈은 경제활동인구 1인당 203만원, 전체 국민 1인당 96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엄청난 규모. 선량한 우리 국민들이 지금까지 부담했고 앞으로 부담해야 할 구조조정 비용이다.
한국경제의 앞날을 위해서는 공적자금이 추가 조성되고 투입돼야 한다. 고유가 등 대외경제여건의 악화 속에 구조조정만이 살 길이고 이를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다수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의 자세와 태도다. 정부는 22일 「이렇게 되기까지의 정부실수나 책임」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없이 『부실기업주와 부실금융기관경영진에 대한 책임추궁을 강화하겠다』는 말뿐이었다.
불과 4개월 전까지 『공적자금 추가조성은 없다』던 정부가 어떻게 40조원의 자금을 조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어디에도 「책임」은 없다.
정부는 금융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에 대해 『국민의 혈세 사용에 상응하는 뼈를 깍는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던 정부가 국민들에게 다시 손을 벌릴 때는 「뼈를 깍는 자구노력」은 커녕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때우려 하고 있다.
안의식기자ESAHN@SED.CO.KR
입력시간 2000/09/22 19:03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