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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해운업체 사주 A씨. 그는 돈이 없다며 300억원 상당의 세금을 고의로 내지 않고 버텼다. 국세청이 지속적으로 A씨 재산을 압류했지만 그 규모는 수십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A씨가 해외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하고 사들인 230억원 상당의 화물선을 매각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국세청은 결국 압수수색을 통해 매매계약서를 확보했다. 체납처분면탈범으로 고발당할 위기에 처한 A씨는 그제야 남은 세금을 대부분 납부했다.
국세청은 이런 사례를 포함해 지난해 고액·상급체납자들의 재산을 추적해 1조4,028억원의 세금을 징수했다고 9일 밝혔다. 징수 세금 가운데 현금은 7,27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0.9% 늘었고 부동산과 미술품 등 현물징수는 26% 줄었다. 심달훈 징세법무국장은 "지난해에는 부동산보다 추적이 어려운 현금자산 추적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연도별 현금징수금액은 지난 2012년 4,026억원에서 2013년 4,819억원, 지난해 7,276억원으로 매년 늘어가고 있다. 이는 국세청이 처분 절차가 상대적으로 복잡한 부동산이나 미술품보다 현금징수에 주력한 때문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체납자가 숨겨놓은 2,397건의 재산을 추가로 환수하기 위해 359건의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재산은닉에 협조한 179명을 체납처분면탈범으로 고발했다
고액체납자들의 체납 면면을 보면 악질적이고 수법 또한 지능적이었다. 국세청이 전담팀을 만들어 추적하고 있는 고액체납자는 490명으로 평균 50억원을 체납 중이다. 이들이 체납한 세금만도 약 2조5,000억원. 지난해 무상급식에 투입된 전체 예산(2조6,239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들이 내지 않은 세금은 자연스레 세수 부족을 일으키고 교육과 복지 투자 축소로 이어져 성실한 납세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문제는 고액의 세금을 내지 않고도 이들 상당수는 고가주택에 거주하거나 해외에 체류하면서 호화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유명한 고미술품 수집·감정가인 한 체납자는 부인이름으로 박물관을 운영하며 중국 원나라 유명 도자기 등 고가 미술품을 사들이다 적발됐다. 수십억원을 체납하고도 고가의 산수화와 다이아몬드 반지, 자수정 금목걸이를 사들이며 사치 생활을 한 사람도 있었다.
집안에 수억원의 현금을 쌓아두는 사례도 허다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한 체납자 집에 들이닥쳐 수색하는 도중 가사도우미 지갑에서만 1억4,000만원을 발견하기도 했다. 세금을 징수당하는 중에도 가사도우미를 이용해 돈을 빼돌린 것으로 끝까지 세금 낼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국세청은 고액체납자 상당수가 해외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돈을 빼돌리는 일이 많아 국가 간 정보교류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이 관리하는 고액체납자 490명 가운데 131명, 4명 중 1명이 해외에 자주 오가거나 장기 거주하고 있어서다. 특히 올해 9월부터는 해외금융계좌신고법(FTCTA) 협정 체결에 따라 미국과 금융계좌 정보를 교환하면 해외에 숨긴 재산을 더 많이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최고 포상금이 20억원인 '은닉재산 신고 포상금 제도'도 적극 활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상우 징세과장은 "해외은닉재산추적 전담반을 통해 해외부동산과 금융자산 보유자의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세금을 징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