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13부. 중기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라 <3> 안일한 정책자금 지원

우량 기업 몰아주기 지양… R&D·시설투자 지원 늘려야
고용창출용 자금으로 빚 상환… 동일 목적 중복지원도 수두룩
자금난 중기돕기 취지 어긋나… 효율적 관리시스템 마련 시급

중소기업진흥공단 서울북부지부에서 기업 관계자들이 중소기업 긴급경영안정자금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진흥공단


# 한국정책금융공사는 지난 2011년 '고용창출 우수기업지원 특별자금' 2,400억원 가운데 2,000억원을 대기업 A사에 몰아준 데 이어 지난해에도 2,000억원을 중견기업 B사와 C사에만 집중시키면서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2년간 관련 특별자금을 받은 기업은 고작 5곳. 이 가운데 중소기업은 1군데로 100억원을 받았으며 이 업체는 이듬해 중견기업으로 올라섰다. 게다가 지난해 1,500억원의 고용창출 특별자금 용도로 대출 받은 B사의 경우 이 자금을 고스란히 빚 갚는 데 썼다.

중소기업에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야 할 자금을 소수 대ㆍ중견기업에만 몰아준 것으로도 모자라 기계구입, 공장ㆍ건물 부지 매입, 설비투자, 연구개발 등 고용창출 유관활동에 지원될 돈이 빚 갚는데 쓰여진 것이다. 고용창출 효과는 '0'이 된 셈이다.

일부 우량기업에만 돈이 몰리고 부처ㆍ기관별 중복지원으로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중기 정책자금 지원체계에 과감히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전문가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량기업만 우대할 게 아니라 정책자금을 제대로 통합 관리하는 동시에 성장잠재력이 높지만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5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정부기관의 중소기업 지원정책 규모는 총 1,123개 사업, 12조3,000억원이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종합적인 기업이력관리도 없이 13개 중앙부처청 및 1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따로따로 진행되면서 중복지원에 따른 특정기업 수혜 논란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복지원 문제는 줄기차게 지적돼왔지만 정권이 여러 번 바뀌어도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30일 국회정책예산처에서 발표한 '중소기업 융자지원 사업평가'에 따르면 2012년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융자 받은 6,884개 기업 가운데 무려 3,558개(51.7%) 기업이 같은 해 신용보증기금ㆍ기술보증기금ㆍ정책금융공사 등 다른 정책금융기관으로부터도 함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진공에서만 지원 받은 업체의 평균 총자산이 53억8,000만원, 그렇지 않은 업체가 평균 62억9,700만원으로 중복 지원 대상 업체들의 덩치도 상대적으로 컸다.

더욱이 201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312만2,332개 중 신보ㆍ기보ㆍ정책금융공사ㆍ중진공 등으로부터 보증 및 대출 지원을 받은 업체는 30만7,661개(9.9%)에 불과하다. 이를 감안하면 기관별 정책자금의 특정 중소기업 쏠림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게다가 한 기업에 대해 동일 목적, 동일 대출건에 대한 중복지원도 적지 않다. 국회정책예산처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중진공의 직접대출 6,067건 중 576건(9.5%)이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서 첨부를 조건으로 추진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중진공 직접대출 가운데 신용보증기관이 해당 대출건을 다시 보증한 융자지원액이 총 2,109억원인 점을 보면 다른 중소기업들은 그만큼 자금확보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운 기업을 돕기 위해 마련된 중진공의 긴급경영안정지원융자사업의 경우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1회 이상 총 5회에 걸쳐 지원 받은 업체가 24개였다. 같은 기간 동안 총 4회 이상 융자사업 지원을 받은 업체도 86개나 됐다.

자금 중복ㆍ반복지원 문제는 창업기업도 피해가지 못했다. 2008년 창업기업지원융자사업에서 융자지원을 받은 1,612개 업체 중 2009~2012년 중진공으로부터 다시 융자지원을 받은 업체는 전체의 50.4%인 813개에 달했다.

국회정책예산처 관계자는 "중진공의 직접대출 정책자금 지원은 지원방식이 갖는 취지와 기대효과를 고려할 때 시중은행이나 다른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검증된 우량기업에 대한 지원 집중이 정책 효과조차 더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다른 정책금융기관에서 함께 지원 받은 업체의 이익률은 2.9%로 중진공에서만 직접대출 지원을 받은 업체의 매출액세전순이익률 3.5%를 밑돌았다.

아울러 정책금융기관의 융자지원이 운전자금에만 집중되면서 중소기업의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시설투자를 유인하지 못하는 점도 잘못으로 꼽혔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중진공ㆍ신보ㆍ기보ㆍ정책금융공사 등을 통한 융자지원액(보증 및 대출) 총 44조7,431억원 중 운전자금 융자지원액은 전체의 86.9%인 38조8,772억원에 달했다. 반면 시설자금 지원액은 고작 13.1%인 5조8,660억원에 머물렀다. 특히 신보의 경우 전체 보증액 중 시설자금 관련은 9.4%로 매우 낮았다.

정책금융 지원기관들이 이렇게 일부 기업에만 지원을 집중하는 것은 대출 리스크를 회피하는 데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정책자금 융자사업에 매몰돼 있는 것. 기술력은 있지만 검증 안 된 회사보다는 어느 정도 실적이 보장되는 기업을 지원하는 게 문제 발생시 비판과 손실을 피하기 쉽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더욱이 현재는 정부부처ㆍ기관별로 지원 대상ㆍ규모에 대해 전혀 정보 공유가 안 되는 상황이라 우량기업이 손을 내밀면 너도 나도 지원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지금은 정부 부처와 기관은 물론 심지어 같은 기관 내 부서 사이에서도 서로 어느 기업에 어느 정도 지원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며 "현 시스템에서는 중복지원 문제를 피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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