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희미하게 나마 회생기미를 보이던 한국 경제를 다시 어둠의 미로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산업현장 곳곳에서 정전과 설비파손으로 가동이 중단되고, 부산항 등은 정상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파손돼 장기적인 물류난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수확을 앞둔 농작물의 피해 또한 엄청나 농민들은 생계가 어려울 지경이고, 서민들은 물가앙등으로 이래저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상태가 이럴진 데 경제가 제대로 성장할 리 만무다. 지난 2ㆍ4분기중 1.9%에 그쳤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ㆍ4분기 전망치(2.7%)를 밑돌 경우 올해 전체 성장률은 2%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농수산물의 경우 잦은 비로 인해 5년만의 흉작이 예상되던 터에 태풍 피해까지 겹쳐 가격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농수산물이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 정도이지만 농수산품 가격의 구조적 상승은 일부 공산품과 서비스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물가불안이 우려된다. 이에 따라 경기는 둔화되고 물가는 뛰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지금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다. 하지만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정신을 가다듬어 사태를 수습하는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 정부는 지난 7월에 마련한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전면 재조정, `비상경제운용계획`을 수립ㆍ시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2차 추경 및 적자재정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중장기 재정운용계획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기까지는 다소간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선제적 현장대응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피해집계에 시간을 보내고 예산을 제때 집행하지 못하면 회복은 그만큼 늦어지고 나중에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것 가운데 하나는 농수산물 및 생필품 수급 안정이다. 그 동안 경기침체의 와중에서도 그나마 물가가 안정세를 유지했기 때문에 서민들이 버틸 수 있었다. 물가가 치솟아 민생의 질이 떨어진다면 가뜩이나 취약한 내수 기반은 더욱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비축불량을 적기에 풀고 매점매석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아울러 흉작과 개방파고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농어민에 대한 지원대책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비상 시국이니 만큼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나서야 한다. 노사는 대결을 중단하고 기업회생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며, 분규지역의 주민과 사회단체들은 각종 이슈들을 잠시 접어 두고 경제회생에 힘을 모으기를 바란다.
정치권도 당내 싸움을 중단하고 경제와 민생을 적극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박민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