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모스크바에서 본 오일게이트
권구찬 기자
지난 2004년 봄 국회. 정부가 13년 전 지원한 러시아 경제협력자금이 도마에 올랐다. 옛 소련에 제공한 경협차관 2조원을 돌려 받지 못하게 되자 결국 국민의 혈세로 메우는 내용의 공공자금관리법안을 심의하는 자리였다. 91년 제공한 경협차관은 14억7,000만달러. 산업은행 등 국책ㆍ시중은행이 빌려준 경협자금을 러시아가 상환하지 않자 보증을 섰던 정부가 빚을 대신 떠안았다. 당시 국회에서는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논란의 초점은,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원대국인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나 석유 등 현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협상력조차 한계를 드러냈다는 데 모아졌다. 러시아 경협자금은 노태우 정권이 어수선한 정국의 국면 전환을 꾀하기 위해 소련과 수교를 추진하다 대가로 지급한 자금.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러시아에 갚을 의지가 없었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문가지였다. 국회에서 비난의 화살은 엉뚱하게 법안 손질의 총대를 멘 경제부처에 쏠렸다. 과거 외교안보 라인의 정략적 결정에 대한 경제팀의 해명은 궁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이른바 '유전게이트'로 혼란스럽다. 국정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정상황실의 '보고누락'에 이어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도 관련 사실을 인지했다는 검찰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같은 시각 모스크바. 승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세계 각국 국가원수의 공식수행원 명단에는 어김없이 에너지 전문가들이 포함돼 있다. 자원대국인 러시아와 손잡기 위해서다. 에너지 확보경쟁이 실감난다. 유전게이트가 야기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바로 여기에 있다. '러시아 유전사업'이 복마전처럼 인식될 경우 자원외교의 중요성과 추진력이 훼손되고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해외자원 개발은 대박만큼이나 리스크도 크게 마련이다. 리스크를 떠안지 않으면 '자원자주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생존이 달린 해외자원 개발을 위해서도 유전게이트에서 불거진 의혹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유전게이트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는 점이 모스크바에서 보다 뚜렷하게 보인다.
chans@sed.co.kr
입력시간 : 2005-05-09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