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과 과학재단이 제정한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제23회(2월) 수상자로 포항공대 강 헌(44)교수(화학과)가 선정됐다. 姜교수는 「세슘(CS) 빔을 이용한 반응성 표면산란법」이라는 새로운 표면분석법을 개발한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새 표면분석법은 촉매, 반도체 연구와 나노과학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의 연구활동과 학문세계를 소개한다.姜교수의 이름은 「헌」이라는 외자다. 두 아들의 이름도 각각 「건」과 「윤」. 선친의 이름도 「원」이라는 한 글자다. 특히 선친의 이름은 「하나」라는 뜻이다. 姜교수가 원자 하나, 분자 하나를 다루는 「껍데기 화학」(표면화학)을 할 것을 이미 선친께서 예견한 것이었을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겉과 속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물질도 겉과 속이 다르다. 우리에게 알려진 물질의 성질은 주로 속의 성질이다. 겉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러나 30년전부터 과학자들은 물질의 겉(표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세계를 다루는 나노과학이 등장하면서 겉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영어에 「BEAUTY IS BUT SKIN DEEP」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미인은 단지 피부 두께 만큼이다」(여자를 미모로 고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노과학에서는 물질의 미모(겉모습)가 정말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구리선이 1,000개의 구리 원자가 위에서 아래로 늘어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중 껍데기에 속하는 부분은 위와 아래의 구리 원자 두 개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속」이다. 전기는 구리선에 있는 1,000개의 원자에 골고루 흐르기 때문에 「껍데기 구리 원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전체에 비해 워낙 껍데기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리선을 계속 잘라 원자 몇 개로 이뤄진 구리선이 되면 겉에 있는 구리 원자도 속만큼 중요해진다.
『반도체기술의 핵심은 반도체 위에 얼마나 회로를 가늘게 새기느냐는 것입니다. 기가D램이 넘는 반도체는 회로의 선폭이 원자 하나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런 시대가 오면 원자 하나 즉 껍데기의 성질이 중요해집니다.』
姜교수는 자신이 연구하는 표면(SURFACE)화학을 「껍데기 화학」이라고 부른다.「SURFACE」라는 영어단어의 「S」자만 빌려 「피부(SKIN) 화학」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한번은 부산의 어느 대학교에서 「피부 화학」이라는 제목으로 세미나를 열자 여대생들이 화장품 얘기인 줄 알고 몰려든 적도 있다.
姜교수의 이름이 한 글자인 것처럼 껍데기는 대부분 원자 한 개 두께의 층으로 돼 있다. 껍데기를 이루는 원자 또는 분자 하나하나의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껍데기 화학이다.
『껍데기 화학은 아직 30대의 청년에 불과합니다. 껍데기 화학을 하려면 진공 상태가 필요한데 우주개발이 본격화된 60년대에 들어와서야 완벽한 진공 상태를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姜교수의 실험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치도 진공을 만드는 장치다. 공기가 들어가면 껍데기는 순식간에 부식되기 때문이다. 빛이 들어가지 못하게 은박지로 뒤덥힌 이 기계로 姜교수는 물질의 껍데기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한다. 이런 기계들을 빼면 姜교수의 실험실에서는 비이커나 플라스크 같은 실험기구도, 냄새나는 화학약품도 찾아보기 어렵다. 姜교수는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화학 실험실이라고 자랑한다.
姜교수가 개발한 「세슘(CS)빔을 이용한 표면산란법」은 껍데기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껍데기 분석법이다. A라는 물질이 껍데기 위에서 B라는 물질로 바뀔 때 수많은 중간 물질을 거친다. 姜교수는 세슘 원자를 작살처럼 던져 이 중간물질들을 하나하나 낚아낸다.
『운이 좋았어요. 처음에는 세슘 대신 제논(XE)이라는 원자를 이용했지요. 그런데 대학원생이 가져온 데이터에 세슘이 나온 겁니다. 그 학생이 맨손으로 실험하는 바람에 손에 묻은 세슘이 들어간 거지요.』
이같은 껍데기 분석법은 기존 방법에 비해 껍데기를 파괴하지 않아 여러 외국 학회에서 격찬을 받았다. 촉매, 반도체 연구에서 나노과학까지 姜교수의 껍데기 분석법은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이 연구로 그는 지난해 과학기술부에서 9년동안 연구비를 지원하는 「창의적 연구과제」에 선정되기도 했다.
姜교수는 부인인 김명희씨(40·피아노 연주가)를 미국유학 시절 잠시 한국에 놀러왔다가 만났다. 선을 봤는데 한국에서는 서로 호감만 가졌을 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인도 얼마 뒤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두 사람은 그곳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키웠다. 한국이라는 껍데기에서는 이뤄지지 않던 두 사람의 사랑이 미국이라는 다른 껍데기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포항=김상연 기자】
姜 憲교수가 진공 상태을 만드는 기계 앞에서 물질의 껍데기 위에서 벌어지는 분자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