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을 뚫고 힘차게 솟아올라야 할 기업들이 노사갈등에 발목이 잡혀 신음하고 있다. 1년반이 넘도록 산업현장을 들볶고 있는 통상임금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사내하도급 활용에 제동을 건 최근 판결은 국내 제조업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처럼 켜켜이 쌓인 노동현안 때문에 한 해의 끝이 다가왔음에도 임금단체협상 타결률(10월 말 기준)은 지난 2010년(46.5%)을 제외하면 역대 최저인 51.5%에 불과한 실정이다. 여기에 당장 13개월 후부터 시행될 예정인 정년 60세 의무화에 대해 상당수 기업들이 '준비부족'을 호소해 노사 간 혼란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산업계에 따르면 10월 출범한 현대자동차의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는 현재까지 노사 간 상견례를 제외하면 단 한 차례도 공식 회의를 갖지 못했다. 최근 외부 전문가 4명을 영입해 자문위원단을 꾸리기는 했으나 정작 의견일치를 위한 대화는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선고될 예정인 통상임금 판결 결과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사법부의 판결에 불복해 노사 양측이 동시에 항소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고 현대중공업은 20년 만에 무파업 전통이 깨졌다.
이와 함께 현대차의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본 법원의 판결은 자동차뿐 아니라 조선·정유·화학 등 제조업 전반의 인력운용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 오는 2016년부터 본격 도입되는 정년 60세 제도 역시 임금피크제 도입률이 지지부진한 우리 기업들에 또 하나의 '인건비 폭탄'을 떨어뜨릴 악재다.
문제는 이 모든 갈등의 뿌리를 앞장서서 뽑아야 할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기업의 앞날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현안마다 노사가 소송을 통해 '끝장'을 보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이와 관련해 "2~3년 전만 해도 노동 이슈만큼은 정부가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사법부나 입법부는 뒤를 보좌하는 형태였다"며 "정부가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 산업계의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