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내려 디플레 대응을" KDI마저 한은 공개 압박

"GDP디플레이터 상승률 0% 근접… 일본 닮아가
적극적 통화정책 필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며 공개 압박했다. 경기둔화, 저물가 상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일본과 유사한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국책연구기관이 직접 디플레이션을 거론하며 독립기관인 중앙은행에 강도 높게 추가 금리인하를 주문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KDI는 2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정책 세미나에서 발표한 '일본의 19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재준 KDI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가 최근 수요부진 및 저인플레이션 상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어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수년간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2.5~3.5%)를 크게 밑도는 1%대에 머물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은 0%에 근접할 정도로 하락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KDI가 공식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새 경제팀이 들어선 후 사실상 처음이다. KDI는 그동안 각종 세미나에서 한국 경제의 하방 경직성 등을 우려했지만 디플레이션을 언급하는 것은 자제해왔다.

KDI는 한국 경제가 1990년대 이후 10년 이상 장기 침체 및 디플레이션에 빠진 일본 경제와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가 1990년대 초반 부동산 가격의 하락→GDP 디플레이터 하락→CPI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겪은 것처럼 한국 경제 역시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KDI는 특히 지난 2011년 이후 한국의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이 CPI 상승률을 크게 밑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연구위원은 "그동안 GDP 디플레이터는 CPI에 선행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최근 GDP 디플레이터의 증가율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앞으로 CPI 상승률 둔화를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 미만의 CPI 인플레이션은 실제 디플레이션 상황을 의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저물가 상태가 지속되면 CPI가 1% 미만으로 하락하는 사실상 디플레이션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KDI는 디플레이션을 막으려면 통화당국의 적극적인 의지 표명과 대응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추가 금리인하를 권고했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의 장기 침체 및 디플레이션은 수요부진에 대한 정책당국의 대응 실패가 촉발한 것"이라며 "한국 역시 물가안정 목표 준수를 위한 적극적인 통화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디플레이션이 고착화되면 금융 부채나 재정 등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신속한 통화완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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