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주가 왜곡·불법거래 위험"… '다크 풀' 중대 기로에 서나

투명성 떨어지고 시장가와 괴리… 도입취지와 달리 소량주문 늘어
"기술적 결함 땐 천문학적 배상" 골드만삭스, 관련사업 폐쇄 검토
美 증권거래委도 규제 강화 움직임


최근 월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책 하나가 있다. 바로 살로먼브라더스의 전직 채권 판매인이자 논픽션 작가인 마이클 루이스가 출간한 '플래시 보이즈(Flash Boys)-월가의 반란'이다. 루이스는 대형은행들이 일반인보다 시장지표를 미리 얻은 뒤 수천분의 1 단위로 거래되는 초단타매매(HFT)를 통해 부당 이익을 얻고 있다고 비판했다.

불똥은 HFT를 넘어 다크 풀(Dark Pool·익명거래시장)로까지 튀고 있다. HFT가 일반 투자가의 이익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데 불과하다면 다크 풀은 시장질서 붕괴 등 더 큰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 금융당국이 규제강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골드만삭스가 대규모 배상 위험 등을 이유로 관련 사업 폐쇄를 검토하면서 다크 풀 거래가 중대 기로가 설 지 주목된다.

◇"주가 왜곡·부당 거래 위험" 비판 거세= 로젠블랫 시큐러티에 따르면 미 증시에서 비공개 거래 비중은 전체의 40%에 이른다. 2008년 16%에서 6년만에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로젠블랫은 "대형은행들의 초단타매매 수입은 2009년 50억 달러 정도에서 지난해 10억 달러로 떨어졌지만 비공개 거래 수입은 날로 증가 추세"라고 설명했다.

비공개 매매는 개장 전 주문을 받아 장 종료 뒤 당일 거래량의 가중평균 가격으로 매매를 체결하는 시스템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수수료도 장내 거래소보다 싸다. 비공개 매매는 주로 기관투자가들 대상의 다크 풀과 개인이 이용하는 내부체결 기능제공자(internalizers)로 나뉜다.

문제는 장 마감 때까지 거래 정보가 공개되지 않다 보니 시장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불법 거래의 위험도 크다. 트레이더가 고객들의 매매 정보를 유출해 부당 이익을 취할 수 있고 높은 중개 수수료를 제공하는 다크 풀 거래소로 주문을 몰아줄 가능성도 있다.

가장 근본적인 위험은 주가 왜곡이다. 시간외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미국 내에는 45개 다크 풀과 200여개의 내부화 거래소가 난립해 있다. 다크 풀에서 거래되는 주가가 시장 가격과 괴리되면서 일반 투자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불리한 거래를 강요당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크 풀 거래는 당초 대량 거래로 인한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지만 갈수록 소량 주문이 늘면서 제도 도입의 취지도 무색한 실정이다. 현재 다크 풀의 1회 평균 거래량은 200주 정도로 장내 거래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CFA협회의 로드리 피어스는 "장내 거래와 동떨어진 주문이 늘수록 적정한 주식 가격을 산정하기 어려워지고 유무형의 비용도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월가, 다크 풀 사업 줄이나=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진이 다크 풀 트레이딩 사업인 시그마엑스의 문을 닫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WSJ은 "골드만삭스가 당장 다크 풀을 접지는 않겠지만 문을 닫는다면 다른 투자은행들도 뒤따를 수 있다"고 전했다. 시그마엑스는 미국 내 5대 다크 풀 중 하나다.

이는 기술적 결함으로 인한 천문학적 배상 위험이 다크 풀 사업의 수익을 넘어설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실제 WSJ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2011년 8월 미국 부채한도 상한 증액 논란의 여파로 뉴욕 증시가 급락했을 때 시네마엑스가 가격 산정에 오류를 일으키면서 지난달 투자가들의 손실을 보상해야만 했다.

로이터는 "미 증시의 연간 거래량은 2012년 기준으로 21조4,000억 달러에 이른다"며 "사소한 기술적 결함도 수백억 달러의 가격 산정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골드만삭스의 게리 콘 최고운영책임자(COO)도 지난달 내부 임직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시그마엑스 매출이 줄더라도 다크 풀의 기술적 결함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금융 당국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월가조차도 문제점을 인정하면서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다크 풀 주가가 시장 가격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투자가에 불리할 때는 거래를 제한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또 중소형 다크풀에 대해 장내 거래를 늘릴 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로이터는 "SEC는 2009년부터 다크 풀 개혁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면서도 "메리 조 화이트 위원장과 공화당원인 마이클 피워워 위원이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어 이번에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캐나다와 호주는 투자가들이 장내 시장보다 좋은 조건에서만 거래를 허용하는 등의 규제를 통해 다크 풀 거래 비중을 대폭 낮췄고 유럽, 홍콩 등도 비슷한 규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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