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車업계 가격인하 압박 철강업계 사면초가

국내 조선사 후판 구매 올 12% 감축 계획
신일본제철-도요타 강판가 4% 인하도 부담
공급과잉·저가 공세 속 협상서 수세 몰려 '곤혹'


철강업계가 새해 벽두부터 거세진 조선 및 자동차업계의 철강제품 가격 인하 요구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전세계적인 철강수요 부진과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가운데 철강제품의 핵심 수요처인 국내 조선업계 '빅3'는 올해 후판 구매량을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줄이기로 하며 철강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철강 및 자동차업계를 선도하는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도요타자동차가 올해 자동차강판 가격 인하에 합의한 것도 국내 철강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 올 후판 구매 12% 줄인다=2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대중공업ㆍ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체들은 올해 후판 구매량을 총 650만톤으로 지난해(740만톤)보다 12%가량 줄일 계획이다. 후판은 선박 제조에 쓰이는 철강제품으로 배 한 척을 건조할 때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다.

조선업계가 이처럼 후판 구매량을 줄이기로 한 것은 올해 후판이 상대적으로 덜 쓰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드릴십과 해양플랜트 등의 수주 및 건조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세웠기 때문. 드릴십에 사용되는 후판의 양은 총 2만톤 정도로 30만DWT(재화중량톤수)급 유조선에 쓰이는 후판의 절반에 불과한 반면 가격은 드릴십이 유조선보다 6배나 비싸다.

이에 따라 지난 2008년 이후 후판 생산능력을 72% 늘린 포스코ㆍ동국제강ㆍ현대제철 등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블룸버그통신은 내다봤다. 후판 가격 강세를 염두에 둔 철강업계의 공격적인 증설이 조선 및 철강경기 악화와 맞물려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신일철-도요타 강판가 4% 인하 합의=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신일본제철이 2011회계연도 하반기(2011년 10월~2012년 3월) 자동차강판 가격을 상반기 대비 톤당 5,000엔(4%) 인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도요타자동차는 철강 원료가격 하락을 반영해 신일본제철에 자동차강판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올 1ㆍ4분기 철강 원료인 원료탄 가격은 전 분기 대비 18%, 철광석 가격은 13% 하락했다. 이번 양사의 가격 협상 타결은 관련 업계의 기준이 되는 만큼 국내 철강사와 자동차ㆍ조선업체 간 협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가격협상에서 수세에 몰린 철강업계=현재 국내 철강사들은 조선사들과 1ㆍ4분기 후판 공급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 타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조선사들은 철강사들에 1ㆍ4분기 후판 공급가격을 전 분기 대비 톤당 10만원 이상 인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철강사들은 10만원 이상 값을 내리면 적자가 불가피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협상의 주도권은 철강업계에서 조선업계로 확연히 넘어갔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국내 후판시장이 상당한 공급과잉을 겪는 가운데 가격이 저렴한 중국ㆍ일본산 후판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서다.

조만간 시작될 자동차업계와의 가격협상에서도 완성차업체들이 공급가격 인하를 요구할 게 뻔하다. 국내 철강업계와 완성차업계는 연간 단위로 자동차강판 가격협상을 진행하며 반기에 한 번 정도 가격을 조정한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료가격 하락분을 이미 제품가격에 반영해 가격인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