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시민단체 '딴목소리'개혁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데도 여론은 분열되고만 있다. 출범 4년을 지나는 국민의 정부에게 남은 시간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정리는커녕 각계각층의 상반된 목소리만 커지는 양상이다.
시민단체와 재계가 재벌 개혁을 놓고 대립을 거듭하는 가운데 도덕적 지도력을 상실한 정치권은 정쟁만 일삼고 정책당국은 복지부동에 빠져 경제 리더쉽을 상실해가고 있다. 개혁을 마무리할 마땅한 구심점도 지원군도 없어진 형국이다.
특히 정부 부처는 정책조정기능을 상실해 그동안 펼쳐 놨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거나 마무리하기에 벅찬 입장이다.
때문에 국민의 정권이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경제현안을 풀기 위해서는 정책당국, 시민단체, 재계 등을 포괄하는 이해집단ㆍ시장참여자간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더 풀어달라
최근 들어 재계는 규제완화에 대한 목청을 크게 높이고 있다. 마치 때를 만난듯한 모습이다. 전경련은 지난 19일 결합재무제표제도를 폐지하든 지 아니면 자산 5조원 이상의 그룹으로 대상을 축소해 줄 것을 건의했다.
재정경제부가 결합재무제표 작성의무 대상그룹을 현행 30대그룹에서 자산규모 2조원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확정 발표한 지 나흘만에 나온 반응이다.
지난달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의 출자규제 예외범위가 현실과 크게 동떨어졌다며 조정을 요구했다.
출자회사의 과거 3년간 평균매출액의 25%를 차지하고 피출자회사의 경우 매출의 50%를 충족하는 경우에만 '동종업종'으로 인정해주겠다고 정한 정부의 안이 불합리하다는 주장.
결국 재계의 힘에 눌린 정부는 지난19일 재경부, 공정위, 산자부등 관련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재계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기로 한 발 물러났다.
더욱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는 4월부터 시행키로 예정되어 있었던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는 재계의 로비와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시행 가능성이 불투명해 졌다.
◇ 더 죄어야 한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중단없는 개혁의 마무리를 주문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일 4ㆍ19 혁명기념도서관에서 '김대중 정부 출범 4년 평가토론회'를 갖고 금융구조조정을 가속시키고 재벌개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이에 앞서 지난 15일 공정거래법은 이미 구멍이 나있다며 시행령에서 구체적인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냈다.
참여연대는 지난 1월에 개정 공포된 공정거래법이 예외인정 사유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사실상 제도 자체를 폐기한 것에 다름없는데도 전경련이 이를 또다시 완화해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특히 예외인정 사유의 핵심인 동종업종 및 밀접한 관련업종의 선정 방식에 대해 출자회사 및 피출자회사의 매출액 비중이나 거래비중이 최대인 업종 하나만 예외로 인정해주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 경제현안 국민적 합의 시급
정부가 재벌개혁 프로그램을 강하게 추진해 온 이유는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야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문제도 해결되고 국가경제의 기반도 탄탄하게 다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개혁의지는 지난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구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국 재벌규제의 핵심이었던 30대 기업집단제도도 폐지됐다.
출자총액규제완화의 예외규정인 동종업종에 대한 해석도 재계의 주장대로 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시민단체들은 여기에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정치권은 물론 경제부처도 각계의 목소리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릴 수 있다는 점.
최근 재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정부 정책이 이를 수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민단체의 주장이 거세질 경우 경제 정책이 다시 변화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경제 회복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이해상충은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한 불신을 낳아 결국에는 경제회복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정부의 일관된 정책의지와 자신감, 경제주체들의 위기의식이 다시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