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기보 채권자참여 법정관리기업 M&A 가능 부실 P-CBO발행기업 구조조정에도 도움줄듯 "성실 변제기업 억울" 도덕적 해이 만연 우려도
입력 2004.10.17 17:34:16수정
2004.10.17 17:34:16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원금감면 허용으로 기업구조조정 시장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러나 부실기업에 대해 원금까지 감면해주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것이라는 경계론도 만만치 않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열심히 기업을 운영해 이자를 내고 원금을 갚는 기업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조치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양 기관의 원금감면 허용은 파산으로 한푼도 못 건지기보다는 원금감면으로 해당기업이 살아날 수 있거나 다른 기업에 팔릴 수 있다면 채권회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그동안 양 기관의 원금감면 불가로 인수합병(M&A) 등 기업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어온 기업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이 같은 재정경제부의 유권해석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던 레인콤의 엠피맨닷컴 인수건을 보면 원금감면 허용의 의미는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레인콤의 엠피맨닷컴 인수=세계적인 MP3플레이어 업체인 레인콤(브랜드 아이리버)은 그동안 MP3플레이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법정관리기업 엠피맨닷컴의 인수를 추진해왔다. 엠피맨닷컴의 빚은 100억원. 레인콤은 이중 66억원을 탕감해주면 34억원을 내고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엠피맨닷컴의 채권 100억원 중 41억원을 갖고 있는 신보와 기보는 원금감면 불가의 자체 업무규정을 들어 원금탕감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엠피맨닷컴이 파산위기로 몰리자 법원이 재경부에 신보와 기술신보의 원금감면 허용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재경부의 ‘선별허용’ 입장이 나왔다.
신보와 기보는 재경부의 이 같은 입장은 일반론으로 이것이 바로 레인콤의 원금탕감 요구 수용은 아니라고 밝혔다. 자체적으로 원금탕감의 대상ㆍ금액ㆍ절차 등 기준을 정한 뒤 다시 레인콤의 요청을 검토할 것이라고 신보의 한 관계자는 밝혔다.
◇긍정적 효과=중소ㆍ벤처기업이 어려워진 경우 기업가치가 제대로 남아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창업했지만 시장적응에 실패하면 남는 것은 빚뿐이다. 그나마 엠피맨닷컴과 같이 특허기술이 있어 다른 기업에서 관심을 보이면 다행이다. 하지만 위 사례에서 보듯 어려워진 기업을 사고자 하는 개인이나 기업이 있어도 신보와 기보가 채권자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의 M&A는 그동안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업을 팔거나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는 원금감면이 불가피한데 양 기관에서 업무규정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M&A가 벤처기업ㆍ중소기업의 투자회수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각종 제도적ㆍ사회문화적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조치는 이러한 제도적 제약 중 하나가 해소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장 신보와 기보가 주요 채권자로 참여하고 있는 법정관리기업의 구조조정에 희소식이다. 또 절반 정도가 부실기업이 된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기업의 구조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들 기업은 기보의 보증을 받아 돈을 빌렸다가 부실화된 기업인데 기보가 일정 부분 원금을 감면해준다고 하면 매각 등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부정적 효과=재경부의 원금감면 선별허용 방침에 대해 신보와 기보 일선직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부정적이다. 이 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고 정상적으로 빚을 잘 갚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보의 한 임원은 “기업의 부실은 경제사정이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기업주의 경영책임으로 인한 것도 있는데 원금까지 감면해주면 악용할 소지가 있다”며 “구조조정 명목 아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M&A라고 해도 이면계약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며 “일부러 기업을 망가뜨려놓고 원금감면을 받으면서 다른 회사에 판다면 그 속사정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기보의 한 지점장도 “자격도 안되는 회사들이 적당히 해서 원금탕감을 받으려 할 것”이라고 경계하면서 “또 정상적으로 빚을 잘 갚는 회사들이 억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뜩이나 신보나 기보 돈은 눈먼 돈이라고 정치권에서 욕을 먹는데 부실화된 기업의 원금까지 감면해준다면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느냐”며 이번 조치에 따른 고충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