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할인점 업계의 '할인점 주유소' 사업이 겉돌고 있다. 중앙정부의 '할인점 주유소' 확대정책에도 불구하고 지역여론을 의식한 지방자치단체가 할인점들의 주유소 설립 신청을 잇달아 반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갈등을 조정해야 할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도 사실상 조정기능을 포기해 빈축을 사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008년 대형할인점이 자체브랜드(PB)를 내건 주유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허가한 후 현재까지 오픈한 할인점 주유소는 단 8곳에 그쳤다. 이는 4개 대형할인점들의 전국 점포(331개) 가운데 2.4%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 월마트가 미국 전역 900여개의 매장 대부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 이마트는 현재 SK에너지와 함께 용인 구성점, 통영점, 구미점, 포항점, 군산점 등 5곳에, 롯데마트는 S-OIL과 손잡고 구미점과 수지점 2곳, 하나로클럽은 현대오일뱅크와 함께 고양점 1곳에서 할인점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물가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할인점 주유소 출점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의 설립허가 거부 ▦자영 주유소 업계의 반발 ▦할인점의 유휴부지 부족 등을 꼽을 수 있다. 실제 광주시와 순천시는 각각 지난해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제출한 주유소 건축허가 신청을 불허했다. 롯데마트와 이마트는 이에 맞서 건축 불허가 처분 등 취소소송을 내 최근 위법판정을 받았지만 최종 공판이 나고 실제 오픈까지는 적어도 1~2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정부에서는 할인점 주유소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민심 등을 고려해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지역 자영 주유소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지난해 8월 이마트 군산점과 구미점, 올해 2월 롯데마트 수지점에 대해 자영 주유소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조정을 통해 갈등을 조정해야 할 중기청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애매한 행보를 보여 분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중기청은 한국주유소협회가 지난해 8월 신청한 이마트 군산점과 구미점의 할인점 주유소 사업조정 심의를 1년 가까이 흐른 지난 6일에서야 실시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돌연 연기했다. 중기청은 "자율적인 협의가 될 가능성이 있어 다시 한번 자율조정을 시도하기로 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미 네차례에 걸친 자율조정이 실패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할인점 업계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입장이 달라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자영 주유소 업계는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면서 "여기에 갈등을 조정해야 할 주무부처 역시 분쟁조정을 외면하고 있어 할인점 주유소는 계속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