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 선임기자의 경제난국 이렇게 풀자] <1>이한구 국회 예결위원장

"공공부문서 고통분담 해야"
멀쩡한 대기업 잡는 구조조정은 절대 안돼
비정규직 사용기간 늘리거나 폐지 필요


한나라당 경제통으로 알려진 이한구 예결위원장은 11일 의원회관에서 1시간10분 동안 진지한 자세로 세계 경제위기 원인과 우리 경제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또 전대미문의 위기지만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좀더 냉정한 자세로 힘을 모아 슬기롭게 경제난국을 극복하자며 나름대로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 우리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 상황과 전망을 들려주십시오. ▲우선 현상황은 세계적으로 10년 이상 쌓인 거품이 붕괴하면서 후유증이 나타났습니다.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퍼져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화가 진행되다 보니까 한 나라 때문에 다른 나라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에게는 10년 전 외환위기에 오일쇼크까지 겹친 모습입니다. 전망은 시계제로죠. 지금은 괜찮은 나라가 없습니다. 세계 경제 중심지가 무너져 절박한 상황인 만큼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언제쯤 경기가 바닥을 찍고 회복세로 돌아설까요. ▲펀더멘털이 주저앉은 상황에서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경쟁적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금융위기를 수습하는데도 1년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라앉고 있는 실물경제가 진정되는 데 1~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미국 금융부실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니까 이런 전망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동안 경기는 일정한 사이클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왔죠. 그러나 과거 어느 때보다 침체기간이 길 것 같고 침체의 골도 깊을 것 같아요. ‘L’자형 경기로 가면 침체의 끝이 얼마나 길게 갈지, 또 ‘V’자형이 아니라 ‘U’자형 경기 사이클을 그리면 광폭의 사이클이 될지 차이가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경기회복이 빠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데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요. 성급한 전망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죠. -이런 경제불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지금 경제불황은 단순한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죠. 불황의 골이 깊고 위기극복에 장시간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 대응책은 안 됩니다. 장기간 효력을 나타내는 정공법을 써야 합니다. 무작정 돈 퍼붓기식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어 경쟁력을 제고하고 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기업의 경우 소득이 떨어져도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고 싶도록 해야 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정작 돈이 필요한 곳에는 가지 않는 문제가 있죠. 미시정책에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지금 이곳 저곳에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요. 하지만 지금은 지난 외환위기 때와 다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은 은행과 재벌에는 큰 문제가 없어요. 과거 구조조정할 땐 은행이 여러 기업에 동시 대출한 상황에서 다른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할까 봐 대출을 회피했어요. 지금은 특정기업에 여러 금융기관이 중복 대출을 한 상황이 아니어서 구조조정을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구조조정하기 전에 금융기관에 매출이 더 줄어들어도 특정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 기업이 자구노력을 하도록 은행 등이 촉구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대기업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거시정책은 임시적이고 오래가지 못합니다. 국가부채와 가계부채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있고 인플레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돈을 풀어서는 안 되죠. 멀쩡한 대기업을 잡는 구조조정을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중소ㆍ중견기업에 돈이 가도록 정부 자금이 들어가는 신보 등이 중소ㆍ중견기업에 보증을 많이 해주고 거래은행이 일부 자금을 부담해야 합니다. 실물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경우 외국인이 지배한 은행에 대출압력을 넣기보다는 산업은행ㆍ기업은행ㆍ우리은행 등 국유은행에 증자를 해줄 필요가 있어요. -특히 경제활성화를 위한 기업ㆍ가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기업과 가계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번 불황은 구조적이고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파고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기업은 체질개선의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살아남아요. 우선 현금확보가 필요합니다. 수익성이 높지 않은 자산은 과감하게 팔아 불황에 대비할 현금을 마련해야 합니다. 고용은 유지하면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필요하죠. 이와 함께 생산성을 올리는 경영혁신이 이뤄져야 합니다. 불황에서도 팔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과소비 체제 속에서 적당히 안주하는 자세는 벗어나야 합니다. 가계는 눈높이를 조정해야 합니다. 지난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살려 경기회복 신호만으로 섣불리 투자해서는 안 되죠. 광폭의 ‘U’자형 경기 사이클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거망동은 위험합니다. 직장도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죠. 생활절약모드로 가야 해요. 불황이 2~3년 계속되면 정부도 대책이 없어요. 전기나 기름 한 방울도 아껴야 합니다. -조기 추경 편성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추경을 통해 돈 푸는 것을 얘기하기 전에 올해 세수부족분을 예측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런 논리라면 올해 예산대비 세수가 10조원 부족할 것 같아요. 이것을 먼저 해결하고 나중에 추경을 논의해야 합니다. 지난해 세계잉여금 2조원과 한국은행 잉여금을 포함해 총 3조원의 추경재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적자 예산인 상태에서는 세계잉여금도 국채를 발행해서, 다시 말해 빚내서 생기는 것입니다. 세계잉여금을 인정하더라도 나머지 재원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이와 관련, 공공 부문에서 고통을 분담해야 합니다. 공무원 인건비가 24조원 정도 됩니다. 공무원 인건비를 10% 깎아야 합니다. -고용 촉진을 위해 비정규직법 개정론이 나오고 있는데요. ▲비정규직 사용기간의 제한을 없애는 게 맞습니다. 현행 법이 규정한 사용기간 2년의 시한인 오는 7월이면 비정규직 고용대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4년 정도로 연장하든지, 아니면 현행 2년 제도를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몇 년간 실시를 연기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보류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정규직 채용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사회보험료를 정부가 부담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다만 대기업에 대해서는 지원을 배제해야 합니다. -돈이 제대로 돌지않고 머니마켓펀드(MMF)나 수시입출금방식예금(MMDA) 등 단기금융상품에 몰리는 등 금융권에서 맴돌고 있는데요. ▲미래가 불안하고 금리가 너무 낮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중장기로 돈을 맡기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인플레가 생기고 환율이 오르고 정부가 은행에 겁을 주니까 이런 상태에서는 단기 상품에 돈이 몰릴 수밖에 없어요. 예금과 관련 금리를 조금 높여줘야 은행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대출해줄 수 있어요. 저금리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양극화가 심한 상태에서 진짜 어려운 사람은 금리인하 혜택은커녕 돈 구경도 못합니다. 저금리는 진짜 어려운 사람이나 기업보다는 멀쩡한 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고 통화증발만 유발합니다. 따라서 중장기 예금금리를 높여야 합니다. 현행 5,000만원인 예금보장 한도를 예컨대 1억원 정도로 높여줄 필요가 있죠.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더라도 서민금융기관에 지원해서 영세 상인 등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한 국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국회가 규제개혁법안을 신속히 처리해야 합니다. 의료ㆍ교육 분야의 투자를 늘리기 위한 규제완화와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제 완화 또는 폐지, 금산분리 완화, 미디어 관련 등과 관련된 법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미디어법은 규제법이 아니라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맞춘 산업법입니다. 국회는 또 비정규직법도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여야 간 타협을 봐야 하죠. 국회는 국민이 세금 감시하라고 만든 곳입니다. 세수부족분 벌충을 위해 고통분담 차원에서 공공 부문이 한시적으로 세비나 임금을 깎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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