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가 커져가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 전략이 불황타개를 위한 ‘디그레이드(degrade)’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2일 산업계에 따르면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 고가 제품보다 중저가 제품 판매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대기업들을 비롯, 각 업체들은 제품 기능을 일부 없애거나 크기를 줄여 가격경쟁력으로 시장에서 승부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LG전자는 독특한 디자인을 갖춘 프리미엄급 LCD TV인 스칼렛TV 마케팅을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전격 중단할 계획이다. LG전자의 한 고위관계자는 “내년에는 다른 TV보다 가격이 15~20% 높은 스칼렛TV를 대체할 새 모델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 금융위기에 따른 소비시장 위축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LG전자는 또 통화나 문자 외에 복잡한 기능을 과감히 정리해 가격을 절반으로 낮춘 와인폰 등 보급형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LG전자에 따르면 와인폰의 경우 지난 5월 출시한 후 국내 판매 100만대를 돌파한 효자 품목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용량을 3분의2로 줄인 232리터급 소형 보급형 김치냉장고도 불황을 노린 제품이다. 삼성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 가전ㆍIT제품의 고급 기능을 일부 제거하는 대신 가격을 낮추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질수록 가격경쟁력이 가장 중요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윤우 부회장도 “전자업계 최대 격변기를 맞아 (TVㆍ가전 등) 세트 제품에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맥락에서 노트북을 대체하는 넷북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8~10인치대 작은 화면에 1㎏ 내외의 무게 등 전체적인 크기와 용량 등을 줄였지만 40만~80만원가량 저렴해졌다. 삼성전자는 또 팩스 기능을 없애고 가격을 20만원대로 낮춘 컬러레이저 복합기도 선보였다. 현대자동차도 소형차 중심으로 마케팅 전략 변화를 추진 중이다. 최재국 현대차 사장은 “최근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시장에서 소형차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라며 중소형차 중심의 판매에 심혈을 기울이기로 했다. 또 보급형 제네시스도 선루프ㆍCD체인저 등 일부 편의장치를 빼고 가격을 620만원 내린 4,660만원으로 책정했다. 이러한 주요 기업들의 디그레이드 마케팅 전략은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판매 전략과 제품 생산라인 가동 전반에 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상희 대한상공회의소 유통정책팀장은 “기업들이 불황을 맞아 중저가형 상품 마케팅 쪽으로 옮겨가는 추세”라며 “갑자기 저가형 신상품을 개발하기는 힘들겠지만 가격대가 낮은 상품군을 확대하는 등의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경향은 향후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