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초대석]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시장개혁 로드맵, M&A 방어에 도움"
순환출자로는 적대적 인수합병 막기 힘들어
계좌추적권 부활 고속도로 무인카메라 역할
분양가 담합, 行訴제기해도 위법성 입증 가능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기초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나 구조조정본부의 활동내역 공개요구 등은 결국 기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해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입니다.” 강철규(60) 공정거래위원장은 재계와 부처간 끊임없는 논란이 일었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취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특히 개정안에 담긴 계좌추적권 부활에 대해 “고속도로의 무인감시카메라가 실제 작동 여부와 상관없이 과속 예방효과가 있는 것과 같다”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지적된 국내 우량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에 대해서도 그는 “순환출자를 통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지분구조로는 적대적 M&A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재벌들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은 적대적 M&A를 방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이라고 말해 재계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난 몇 달 동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과 관련해 숨돌릴 겨를 없이 지내온 강 위원장을 만나 현안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곧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개정안이 당초 취지보다 많이 후퇴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의결권 제한문제, 출자총액규제 졸업기준, 금융거래정보요구권(계좌추적권) 등의 큰 쟁점으로 논란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내용이 일부 수정된 것은 관계부처ㆍ재계 등에서 제시한 합리적인 의견을 수용한 것으로 보셔야 합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에 유예기간을 주어 단계적으로 15%까지 축소하기로 한 것은 국내 기업들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적 측면과 제도변화에 따라 기업이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감안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삼성전자 등 우량기업들이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의 위협에 처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행사범위를 축소해도 건강한 기업은 적대적 M&A의 가능성이 적습니다. 지분구조를 보면 비금융 특수관계 지분이 외국인 지분보다 오히려 높습니다. 외국인 지분이 많아도 외국인이 단일 주체가 아님을 감안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M&A가 이뤄지기도 어렵습니다. 임원임명이나 합병 등을 위해서는 상법상 특별결의를 해야 하는데 출석주주의 3분의2가 찬성해야 합니다. 전체 주주 중 75%가 참석했다면 이중 50%는 찬성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실질적으로 성사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적대적 M&A인 경우에도 방어수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상장법인 주식을 장외에서 5% 이상 보유하거나 1% 이상 변동시 5일 이내에 보고하도록 한 보고의무제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순환출자를 통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지분구조로는 적대적 M&A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SK㈜ 사태는 순환출자를 통한 경영권 유지가 M&A 시도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건전한 소유 및 경영구조를 갖추는 것이 M&A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대응방안입니다.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은 기업들의 M&A 방어를 도와주는 부분입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계좌추적권(금융거래정보요구권)이 부활되게 됩니다. 계좌추적권이 공정위의 직권조사 등에 도움이 되겠지만 재계는 이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하는 데 계좌추적권이 없으면 조사가 힘들어집니다. 기업들이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를 하는 데 있어 87% 정도가 금융사를 통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빈도를 보면 지난 99년부터 실제 발동은 17회, 이중 13회 정도가 99년 한해에 이뤄졌습니다. 나머지는 1년에 한 건 있을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필요성은 높습니다. 보유 자체가 부당내부거래를 사전에 억지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의 무인감시카메라가 실제 작동 여부와 상관없이 과속 예방효과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 전 재벌 총수들과 면담을 마치셨습니다. 기업인들과 만나며 느낀 점, 또 기업인들이 요구한 부분은 무엇인지요. ▲시장개혁3개년 로드맵에 대해 재계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공정위는 규제강화가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으로 개선해 점차 시장 자율규율로 진행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면담과정에서 기업인들은 충분히 이런 취지를 이해했고 협조를 약속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이 얘기하는 것과 개별그룹이 얘기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점도 많이 확인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의 만남에서 에버랜드 지주회사 논란에 대한 언급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없었습니다. ▲별도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현 상태에서 보면 에버랜드는 비금융사 주식소유행위 공정법 위반이라는 얘기는 전달했습니다. 오는 30일 위원회를 열어 平ㅐ㎰【?시정조치를 내릴 예정이며 비금융사 주식처분 등의 조치를 내릴 예정입니다. 다만 주식처분 등이 단기간에 처리하기는 힘든 만큼 일정기간의 유예기간을 줄 것입니다. 또 에버랜드는 향후 자산을 늘려 지주회사에서 벗어나더라도 기존 사안에 대해 법 위반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주회사에서 벗어나도 지주회사 규정을 받아야 하는 등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재벌의 구조조정본부에 대한 개혁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 등 특정 그룹을 타깃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정그룹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 과거 비서실ㆍ기획실 등으로 불리던 조직이 97년 이후 전부 구조본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조본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모두 존재합니다. 본래 역할에 따라 구조조정업무를 추진하는 것이 순기능이라면 정경유착에 치우치거나 계열사 지배 등을 위해 내부거래를 기획하는 일 등이 역기능입니다. 순기능은 살리되 역기능은 최소화하거나 없애자는 게 공정위의 입장입니다. 역기능을 없애려면 구조본 활동의 투명성을 높이면 됩니다. 하지만 기업집단 결합재무제표의 주석을 통한 공개는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난색을 표명해 쉽지 않아 여러 대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112개 서비스 산업규제와 관련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공정위는 비서비스 산업의 규제에 대해서도 규제개혁위원회와 공동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해 일괄 정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는데요. 진전이 있습니까. ▲관계부처 실무자들로 구성된 총괄 태스크포스(TF)에서 서비스산업 규제의 주요 과제들을 논의해 조만간 실무협의를 완료할 예정입니다. 비서비스 분야도 미합의된 과제는 경제장관간담회, 국무조정실(규개위) 등을 통해 의견을 조정할 것입니다. 7월 중순쯤 기자회견을 통해 비서비스 분야의 진행상황과 내용을 발표할 방침입니다. -최근 공정위에서 용인 동백ㆍ죽전지구 동시분양가 담합결과를 내면서 한차례 논란이 일었습니다. 건설사들은 행정소송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분양가 담합의혹을 제기한 첫 사례였습니다. 9명의 위원들이 오랫동안 의견교환을 했습니다만, 업체들이 모여 얼마 이상은 받아야 한다는 기준을 정하는 동시에 이를 위해 수십차례 협의체를 구성해 만난 점 등은 담합행위가 분명하다는 상당한 근거가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행정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위법성 입증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정부에서 중소기업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도급 거래관행 개선도 부쩍 강조되는 분위기입니다. ▲문제는 하도급 법 적용 대상이 현재 제조업과 건설업에만 국한돼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서비스업ㆍ유통업까지 적용대상을 확대시키고자 합니다.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도급법 대상이 16%밖에 안되는 부분이 77%까지 적용 가능합니다. 총수들과의 면담에서도 하도급 업체들의 문제를 풀어주는 걸 생각해달라고 요청했고 삼성ㆍ현대 등은 아주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위원장에 대한 평가가 다양합니다. 진보성향의 학자답게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개혁이 퇴보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우선 정확한 평가들은 아닌 것 같아 섭섭한 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진보냐 보수냐라는 평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합리주의자, 합리적 시장주의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시장이 투명하고 공정해지면,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되면, 우리 경제가 건강해지고 성장잠재력이 커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한정된 인적ㆍ기술자본이 죽 생산적인 곳부터 차례로 배분되는 것을 의미하며 시장이 잘 돌아갈 때 가능한 부분입니다. 결국 경제가 최고의 성장잠재력을 보유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진보냐, 보수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시장이 운영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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