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 걸린 중기 범위 개편작업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연기될 듯…업계·학계 “부작용 커 신중해야”


“현행 범위 유지하고 새로운 질적 기준 도입”주장도

이달 말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중소기업 범위 개편 작업이 연말 혹은 내년 상반기까지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반발 확대와 신중함을 요구하는 각계의 지적에 따라 급속도로 진행되던 범위 개편 작업에 제동이 걸린 것.

14일 서울 상암동 중소기업DMC타워에서 중소기업중앙회 주최로 열린 ‘중소기업 범위 개편 관련 토론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범위 개편이 현 상태로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아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또 중소기업청의 매출액 기준 축소 방침과, 중소업계의 매출액 기준 확대 요구에 대해, 현행기준을 유지한 채 질적인 기준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박성훈 이노비즈협회 부회장은 “이번 개편안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작용이 많아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며 “매출액 800억원이든 1,500억원이든 해당되는 기업체수는 전체 중소기업의 2~3%에 불과해 큰 영향이 없는 만큼 지금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또 매출액 기준으로만 단일화하지 말고 종업원 수 기준도 추가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중소기업청은 지난달 공청회를 통해 중소기업 기준을 매출액으로 단일화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매출액을 업종별로 800억·600억·400억 원 등 3개 그룹으로 나누는 안을 내놓았다.

이동주 IBK 경제연구소 소장도 “이번 개편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며 “중소기업 범위 상한기준, 관계회사제도를 도입된 지 얼마 안됐는데 또 바꿀 필요가 있냐”고 꼬집었다. 그는 “경제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매출액도 늘어나기 마련인데 매출액 기준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학계를 대표해 나온 이춘우 서울시립대 교수는 숫자에 치우친 논의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업력을 고려한 기준 등 질적인 평가기준을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며 “상호출자제한집단이 아닌 기업은 다 중소기업으로 분류해 창업기업-성장기업-글로벌강소기업으로 나누는 기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새로운 안을 제시했다.

이에 비해 중소업계는 매출액 기준을 2,000억원 이상으로 상향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재광 광명전기 회장은 “원자재값 변화에 따라 매출액이 2배 차이가 나기도 해 경제 여건을 고려했을 때 2,000억원 기준이 맞다”며 “우리와 상황이 다른 유럽 기준을 국내에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맞지 않으며 관계회사제도 역시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전 중소기업학회장)도 “중기청이 내놓은 개편안은 중소기업 범위를 급격히 축소시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상위중소기업들이 대거 빠져나가 중소기업의 경쟁력 문제를 유발하고 영세한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게 된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변태섭 중기청 과장은 의견을 조율 중이라고 신중함을 드러내면서도 중소업계의 요구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사업체가 아닌 제조 기업체 기준으로 전체 45만2,900여개의 기업중 매출액 2,000억원 이상 기업은 1,090개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소기업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또 “올해 안에 범위 개편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범위 조정은 업계와 정부의 의견이 많이 달라 의사 청취와 결정 과정이 길어지면 내년까지도 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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