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살리기 추석도 잊은 한보당진제철소

◎연휴내내 전직원 정상조업/“조상님도 용서하실겁니다”/“돈 아끼자” 사내합동차례도 취소/10·12월 보너스 반납 정상화 온힘한보철강 당진제철소 이재운소장은 추석아침에 두번 식사를 했다. 사원 아파트에서 가족들과 함께 첫번째 식사를 했다. 부인(이덕례씨)이 『아무리 바빠도 조상은 모셔야할 것 아니냐』며 제수용품을 싸들고 아이들과 함께 내려왔다. 몇달만의 가족상봉이었다. 이소장은 새벽 5시께 일어나 차례를 지낸 뒤 공장으로 향했다. 이소장이 제철소에 도착한 것은 6시50분. 곧바로 구내식당으로 향한 그는 직원들과 추석아침을 다시했다. 메뉴는 송편과 미역국, 어묵. 그 자리에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면서 두번째 식사를 마친 그는 채 10분도 안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식사시간 조차 아깝습니다.』 1제강공장의 박원식씨는 상오 7시에 야간작업자와 교대, 전기로 조작실 제어판 앞에 앉았다. 두터운 유리가 전기로와 조작실 사이를 막고 있지만 섭씨 1천6백도가 넘는 전기로의 열기가 후끈 전해져 온다. 시스템 모니터에 슬래그(불순물) 제거 작업표시가 나타나자 그는 능숙한 솜씨로 매니퓰레이터를 조정해 전기로 안에 산소를 불어 넣는다. 노란 불꽃이 크게 일어나고 용암같은 슬래그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박씨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서산에서 출근하는 그는 추석날 차례도 못지내고 새벽길을 나섰다. 아버지는 『괜찮다. 다녀와라』 하셨지만 어머님의 원망스런 눈초리가 자꾸 생각난다. 『어쩌겠습니까. 회사가 위태로운데…조상님도 용서해줄 겁니다.』 계기판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한보철강은 지난 2일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기한은 없다. 경영이 호전돼 운영자금 부족이 해소될 때까지 모든 직원의 상여금과 성과급 지급을 중단키로 했다. 이번 추석연휴 닷새동안 정상조업을 하기로 한 것도 비상경영의 일환이다. 이 회사의 노사협의기구인 한가족협의회는 지난 12일 추석연휴와 특별보너스, 귀향버스제공 등 예년의 수혜를 모두 반납하고 비상근무를 하기로 결의했다. 한보는 연휴기간동안 열연강판 2만6천5백톤과 철근 1만7천3백톤 등 모두 4만3천8백톤을 생산, 30억원 가량을 더 벌기로 했다. 구자도 한가족협의회 근로자대표는 『직원들의 86%가 연휴기간 정상조업에 찬성했다』며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한가족협의회는 차례를 못지내는 타향출신 직원들을 위해 아침에 전직원이 합동제례를 지내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산 이외의 비용은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직원들의 반대로 철회했다. 직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0월·12월의 보너스도 반납키로 했다. 『추석보너스까지 합치면 모두 84억원 가량을 원료구입에 쓸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구대표는 말했다.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한보철강은 그동안 제품을 팔아 스스로 운영자금을 마련해 공장을 돌려왔으나 최근 원재료 가격이 크게 오른데다 환율인상 등 악재가 겹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포항제철과 동국제강이 지난 7월말 「자산인수 방식의 한보철강 인수」를 채권은행단에 제의한 뒤로는 금융단의 자금지원마저 완전히 끊긴 상태다. 그래도 이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내년 명절에는 파란 작업복을 자랑스럽게 입고 선물 보따리를 안고 귀향버스에 오르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구대표는 그날을 그리며 작업장으로 향했다.<당진=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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