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7년 6·29선언이 있은지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정치민주화는 크게 신장되었지만 경제위기론이 대두되는 등 우리 경제의 장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지난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8% 수준에 달하였고 수출증가율도 장기적으로 크게 둔화되지 않아 당초 걱정하였던 만큼 경쟁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낮은 임금 인력 고갈
그러면 이같은 성과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동안의 산업구조 변화를 살펴보면 한가지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87년이후 중소기업이, 그중에서도 하도급업체가 엄청나게 증가한 점이다. 80년대말부터 임금상승으로 경쟁력의 위기를 맞은 대기업들이 임금이 낮은 중소협력업체를 발굴하여 이들에 생산을 넘겼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외주구매로의 전환은 비단 대기업에 그치지 않고 중소기업으로도 번져 중기업은 소기업으로, 소기업은 다시 영세기업으로 외주생산의 연쇄적 확대가 일어났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비율은 크게 늘어나 일본이나 대만 수준에 육박하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이같은 하도급의 증가는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전에는 대기업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임금인상을 주도하였으므로 중소기업으로 생산을 이전할 인센티브가 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는 중소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등 임시방편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낮은 임금의 인력공급이 고갈되어 외주생산의 확대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90년대에 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에 임금격차는 더이상 벌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는 곧 중소기업을 통한 가격경쟁력의 유지방안이 효력을 잃게 됨을 의미한다. 무엇인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는한 앞으로 경쟁력 유지가 어려워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기술개발자금 부족
이처럼 지난 10년간 우리 기업들의 대응방안은 한마디로 생산비용의 절감, 즉 가격경쟁력 확보에 매달려 온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우리 기업들은 기술집약적 생산활동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품목으로 과감하게 전환을 하지 못하였을까.
첫째, 산업자금의 조달방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기술개발은 회임기간이 길고 실패의 위험도 높다. 따라서 기업에 자기자금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기술개발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이 주된 자금조달원이 차입자금이고 그것도 기업의 수익성보다는 부동산 등 물적담보로 평가를 받게될 경우 기술개발은 구두선에 그치게 된다. 따라서 금융개혁이 시급하며 특히 수익성을 중시하는 기업을 골라내도록 금융기관의 변별력 제고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둘째, 산학협동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본래 대학의 본업은 기초연구이고 기업에서는 상업적 기술을 요구하므로 양자간의 융화가 생각 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을 주는 곳은 대학이므로 공급자인 대학의 자세가 보다 고객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내의 안이한 연구풍토에 자극을 주기 위하여 산학협동에 관한 국책과제 선정시 외국대학이나 연구기관에도 문호를 개방하는 조치 등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창의성 발휘 도와야
셋째, 창의적인 기업가들이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에는 사회적 풍토가 아직 미비하다. 각종 규제와 이권사업으로 인한 정경유착도 문제이지만 상품의 품질이나 납기준수보다는 사회적 연고, 예컨대 고향 선후배나 친인척 관계가 중시되는 거래풍토에서는 기업가의 창의성이 배양될 수 없다.
또한 기업가적 잠재력이 있는 인재들의 능력배양이 방치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미국의 경우 중소기업청의 지원하에 창업자는 물론 기존 중소기업인에게도 경영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개선될 때 비로소 우리 기업들도 높은 임금과 금리만을 탓하지 않고 선진국 기업과 같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적극적 대응자세로 바뀔 것이라고 여겨진다.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동대학원 경제학석사 ▲미 워싱턴대 경제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