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랄때는 언제고…공장 문닫을 판"

■ '규제에 우는 中진출 한국기업' 칭다오를 가다
1,200개사 입주…고용조건 강화 등으로 비용 급증
베트남·멕시코 등지로 이전희망 기업 줄 잇지만
조건 까다로워 청산도 쉽잖아 "한국정부가 나서라"


칭다오 스팡역의 새벽 바람이 차갑다. 마치 달콤한 ‘러브콜’에 이끌려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돌연 싸늘하게 변해버린 중국의 태도에 빈털터리로 밀려나야 하는 한국 기업들의 답답한 처지를 말하는 것 같다. 스팡역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청양공단에는 1,200여개 한국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곳 기업인들은 외자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갑작스런 혜택 축소로 살길이 막막해진 한계 상황에 빠졌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익명을 전제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중소 액세서리 업체의 A사장이 지적한 가장 큰 어려움은 외자기업을 타깃으로 한 규제 강화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우 내년 노동계약법 시행 및 각종 법률 규제 강화로 48.9%의 비용 증가가 예상됩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게 됐어요. 큰 기업은 당분간은 연명하겠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겁니다. 중국 사법ㆍ세무ㆍ행정당국의 행태를 보면 한국 기업을 차별 대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집니다.” 공예품업체의 B사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1998년 한국 기업 진출 초기에는 중국 정부가 갖가지 혜택을 주면서 외자유치에 ‘올인’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이 앞 다퉈 칭다오에 진출해 중국 경제에 적지않은 기여를 했지요. 중국 경제가 발전한 지금 그 과실을 나눠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고 있으니 배신감마저 느껴집니다. 그래서 중국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해 최근 몽골에 현지조사를 다녀왔습니다. 요즘 칭다오를 떠나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11월18일 KOTRA 칭다오 무역관이 호찌민과 하노이 지역의 변호사 등을 강사로 초청해 마련한 ‘베트남 투자설명회’에는 130개 업체가 참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또 다른 공예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칭다오지역의 기업환경이 악화되면서 베트남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ㆍ멕시코 등으로 생산현장을 이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면서 “특히 생산비용이 낮고 접근성이 비교적 용이한 베트남에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칭다오의 많은 한국 기업들이 떠나려는 것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노동계약법으로 임금이 크게 상승하고, 가공무역 금지로 세금 부담이 가중돼 이익 창출이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심한 인력난과 토지사용세 신설 등에 따른 잡비용 증가로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 우리 기업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각하는 것은 노동계약법. 내년에 이 법이 시행되면 기업들은 10년 이상 고용이나 두차례 이상 고용계약을 맺은 근로자에 대해 종신고용을 보장해야 되고 퇴직금 지급이 의무화된다. 양장석 KOTRA 칭다오 무역관 관장은 “노동계약법 시행으로 기업수익이 급감하고, 특히 중소업체의 부담 증가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칭다오 업계 관계자는 “노동계약법이 시행되면 노동 계약 사실이 중국 정부에 등록돼 중국 근로자의 사회보험 가입이 의무화된다”면서 “여기에다 연간 두자릿수의 임금 상승 속도까지 감안하면 내년엔 인건비 부담이 한꺼번에 50% 이상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가공무역 금지조치는 칭다오의 수출업체들을 고사직전으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연간 14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임가공업체의 C사장은 “가공무역 금지로 부가가치세 환급이 폐지되면서 매년 7만달러의 세금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면서 “그렇게 되면 전혀 이익을 남길 수 없다”고 말했다. 현지 업계에 따르면 칭다오에 진출한 3,000여개 한국 기업 중 70% 이상이 가공무역업에 종사하며 대다수 기업이 공장을 가동할수록 손해만 늘어나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처럼 한계상황에 이른 기업들의 탈출구는 좁다. 청산절차가 1~2년이나 걸리는데다 중국 정부가 무리한 청산요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중국 사업을 정리하기 원하지만 기업을 청산하려면 그동안 받았던 세금 혜택을 모두 토해내야 합니다. 그러니 말 없이 떠날 수밖에 없지요.” C사장은 “변심한 중국이 한국 기업들을 ‘청산불가’의 궁지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계상황에 직면한 현지 업체들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A사장은 “우리 정부가 칭다오의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돌연한 규제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을 인식하고 청산의 간소화와 청산 세액의 현실화를 정부 간 협력을 통해 해결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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