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이 최고급 스포츠카 생산업체인 포르셰를 인수했다.
양사의 합병 결정으로 독일 자동차산업의 대부인 포르셰 가문과 사위집안인 피흐 가문의 경쟁도 막을 내렸다.
24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폭스바겐과 포르셰는 23일(현지시간) 각각 경영감독위원회(이사회)를 열고 폭스바겐이 2단계에 걸쳐 총 80억 유로를 투입해 포르셰를 인수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폭스바겐은 먼저 포르셰의 지분 49.9%를 인수하고 향후 나머지 지분을 인수한다. 합병작업은 2011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폭스바겐과 포르셰를 소유하고 있는 피흐와 포르셰 두 가문은 새로 출범하는 통합 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해 최대주주가 된다. 두 집안이 각각 어떻게 지분을 나눠가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어 독일의 니더작센 주 정부가 20%, 중동의 카타르 국부펀드가 17%의 지분을 갖게 된다. 카타르 국부펀드가 증자(50억 유로)에 참여하는 형식이다.
합병된 폭스바겐은 올해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2위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폭스바겐과 포르셰는 지난해 640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760만대를 판매한 도요타를 뒤쫓고 있다. 폭스바겐은 2018년에 도요타를 제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2위를 기록했던 제너럴모터스(GM)는 파산보호신청과 한계 브랜드 매각 등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진행 중이어서 3위 이하로 뒤쳐질 것이 확실하다.
포르셰 인수로 폭스바겐은 폭스바겐, 아우디. 스코다, 벤틀리, 세아트, 람보르기니, 부가티에 포르셰까지 10개 브랜드를 보유하게 된다. 폭스바겐은 대중적인 차량을 많이 생산하는데 비해 포르셰는 연간 판매 대수가 10만대에 못 미치지만 고급차량이 주력이어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폭스바겐과 포르셰는 임직원이 37만8,000명에 달하며 지난해 1,200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포르셰 이사회는 이날 16년간 포르셰를 이끌어온 벤델린 비데킹(56) 최고경영자(CEO)와 홀거 해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경질했다. 그의 자리는 미카엘 마치트를 승진 기용했다. 비데킹 CEO는 90년대 경영난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포르셰를 구해냈으나 2005년 이후 폭스바겐을 무리하게 인수하려다 실패해 짐을 싸게 됐다.
폭스바겐 인수를 지휘한 비데킹은 꾸준한 지분을 늘려 폭스바겐의 지분 50.76%를 확보하며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 했지만 이 과정에서 100억 유로의 빚을 졌고 금융 위기까지 덮치자 끝내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비데킹은 황금 낙하산 규정에 따라 퇴직 보상금으로 5,000만 유로를 받게 된다. 비데킹은 이익의 0.9%를 가져간다는 계약조건에 따라 지난해 7,740만 유로를 보수로 챙겼다. 고액 보너스 논란이 불거지자 비데킹은 퇴직 보너스의 절반인 2,500만 유로를 포르셰 직원의 권익향상을 위해 기부하고, 언론 등 3개 단체에도 각각 50만 유로를 내기로 했다.
한편 포르셰와 폭스바겐은 자존심 대결은 독일 자동차산업의 대부인 페르디난트 포르셰(1875~1951)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디난트는 폭스바겐의 국민자동차 '비틀' 의 설계자인 동시에 포르셰의 창업자로, 양사의 초기 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딸인 루이제는 폭스바겐의 운영자인 안톤 피흐와 결혼했고 아들인 페리는 포르셰의 경영권을 승계했다. 이어 그의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흐가 폭스바겐의 회장,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셰가 포르셰의 회장직을 맡아 통합 주도권을 놓고 혈투를 벌였다.
포르셰 가문이 선공을 펼쳐 4년간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최종 승리는 인내심을 발휘한 피흐가문이 챙겼다. 올해 72세의 페르디난트 피흐는 "양사의 결합으로 폭스바겐과 포르셰는 세계 자동차산업을 선도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며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