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묵은 주택공급시스템 대수술하라] <중> 소비자 선택권 확대해야

공급면적 '85㎡' 쏠림현상… 수요변화 맞춰 국민주택기준 조정을
규제·인센티브 걸려 특정면적 중심 시장 왜곡
민영주택은 기준 폐지… 면적 점진적 확대 필요
청약통장 칸막이도 없애… 자유롭게 분양받게 해야

변화한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청약제도와 국민주택 규모 등의 기준을 개선함으로써 주택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다양한 주택형을 공급해 소비자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위례신도시 전경. /사진제공=LH


6월 분양을 앞둔 대구 달성군 옥포면 옥포택지지구의 '옥포 대성베르힐'은 1,067가구 전체가 전용면적 84㎡로 구성됐다. 세종시 '세종반도유보라' 역시 84㎡ 단일면적으로 580가구를 공급한다. 최근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중소형 면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파트 공급 물량의 상당수가 84㎡ 주변에 몰리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0 인구주택총조사 10% 표본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아파트 중 30%가 85㎡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인 국민주택 규모(85㎡)를 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넓은 면적을 지으려다 보니 84㎡ 공급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1.9%를 차지한 소형 주택 기준인 60㎡까지 합하면 전체 31개 면적 구간 중 절반 이상이 85㎡와 60㎡ 두 면적에만 쏠리는 것이다.

◇주택 수요는 계속 변하는데 국민주택 규모는 늘 85㎡?=국민주택 규모는 지난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면서 1인당 적정 주거공간을 5평(16.5㎡)으로 보고 당시 평균 가구원 수인 5명을 곱해 탄생한 면적이다. 다만 적정 주거공간을 5평으로 산출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규모에 맞춰 85㎡를 정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문제는 이 면적이 현재 가구의 특성과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5인 가구가 보편적이었던 1970년대와 달리 2010년 전체의 24%(415만 가구)였던 1인 가구는 오는 2035년에는 34%(762만 가구)까지 늘 것으로 예측된다. 1인당 주거면적 역시 31.7㎡(2013년 기준)로 늘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조세와 택지·청약 등 모든 시스템이 국민주택 기준에 맞춰 운영되는 상황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국민주택보다) 더 작은 아파트나 혹은 더 큰 규모를 공급할 수 있는데도 규제나 인센티브가 걸려 있으니 일부러 국민주택에 맞춰 지어 결국 전체 주택이 특정 면적에 쏠리는 왜곡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주택 기준으로 전월세 소득공제와 장기주택마련저축 비과세, 무주택근로자주택보조금비과세 등 다양한 세금 특례가 적용되고 있어 주택 공급이 85㎡ 중심으로 획일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양한 주택 공급 막는 국민주택 기준 다시 짜야=전문가들은 다양한 주택면적이 공급되기 위해서는 국민주택 기준부터 재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조만 KDI 실물자산연구팀장은 "현재 국민주택 기준으로 몰린 아파트 면적은 주거 선택의 다양성을 왜곡시킬 수 있다"며 "주택 수요가 다양해지는 것에 대비해 기준을 재조정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 팀장과 이 교수는 KDI '고령화·소가족화가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 및 정책 시사점 분석' 보고서를 통해 1·2인 가구 증가의 대부분이 노년층에서 발생하므로 중대형 면적의 공급을 늘리고 '소형 면적 쏠림'의 주범인 국민주택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예를 들어 2년 동안 90㎡로 늘리고 3년 후 95㎡로 점차 기준을 상향하는 방식을 통해 (국민주택 규모를) 점진적인 방법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거 약자를 위한 공공주택은 기준 면적을 줄여 무주택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민영주택은 기준 면적을 늘리거나 없애 수요자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접근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예치금별 청약 장벽 없애 소비자 선택권 확대 필요=국민주택 기준이 주택 공급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면 청약 단계에서 수요자의 선택권을 방해하는 제도도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단 청약통장별로 세분화돼 있는 면적 기준을 없애 자유롭게 청약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청약통장별 기준을 살펴보면 △청약저축은 국민주택 △청약부금은 85㎡ 이하 민영주택 △청약예금은 각 85㎡ 이하(예치금 300만원), 102㎡ 이하(600만원), 102~135㎡(1,000만원), 135㎡ 초과(1,500만원) 민영주택 △주택청약종합저축은 모든 주택 청약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애초부터 청약통장 종류를 나누지 않고 본인이 청약하려는 주택 유형에 따라 예치금을 각기 달리 넣지 않아도 된다면 좀 더 유연하게 청약통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건설 업계는 민영주택의 수도권 1순위 청약자격 요건을 완화해 더 많은 수요자에게 청약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청약 1순위는 청약통장 가입 후 2년이 지나야 한다. 업계에서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기간을 1년으로 줄이고 청약저축 납입 횟수도 종전 24회에서 12회로 완화시켜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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