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금융기관의 회계장부가 한층 투명하게 작성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금융감독위원회는 11일 국제기준에 맞는 회계제도의 투명성, 신뢰성 제고를 위해 기업과 금융기관 회계제도를 대폭 개정하는 제.개정안을 발표, 99회계연도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기업회계기준의 경우 1차적으로 총자산 70억원이상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적용기업에 적용되나 70억원미만 기업도 이를 준용하도록 해 사실상 모든 주식회사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금융업 회계준칙은 모든 은행, 증권, 보험사가 준수해야한다.
◆회계기준 변경의 배경=이번 회계제도개혁은 사실상 국제통화기금(IMF)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IMF는 우리에게 구제금융을 주면서 우리기업과 금융기관의 장부를 액면 그대로 믿지 못하겠으니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수준의 회계기준을 도입, 기업들에게 강제적용하라는 압력을 넣었고 우리가 이를 수용한 것이다.
이번 개혁의 골자는 환차손익 등 기업 자산·부채의 가치증감을 당해연도에 바로바로 반영토록해 손실이나 이익규모를 수년에 걸쳐 적당히 조절할수 있는 여지를 원천봉쇄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연처리(손실의 경우 수년간에 나눠서 조금씩 상각해 나가는 방식), 취득원가 평가등으로 감춰온 손실액, 신규 충당금 설정에 따른 추가적립액 등이 이번 회계제도 개혁에 포함됨에 따라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손실증대, 자기자본 감소, 부채비율 증대, 자산건전성비율 하락 등의 어려움에 처할 처지다.
투명성증대로 기업 및 국가신인도 회복에는 득이 되나 개별기업이나 금융기관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회계기준 개정=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항목은 그동안 수년간 나눠 처리할 수 있었던 환차손익을 당해연도 당기손익으로 한번에 처리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즉 A기업이 100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했다고 할 때 그동안은 5년간 20억원씩 상각해 나갈 수 있도록 했으나 이번 회계제도 개혁으로 한번에 100억원 모두를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97년12월말 현재 이같은 이연처리로 아직 상각하지 않고 남아있는 환차손 규모는 상장사만 약 20조원이다. 환차손 규모 상위 20개사만도 15조원 규모의 미반영 손실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99년도 결산에 이를 모두 반영해야 한다.
금감위는 이에 따라 2000년말까지 한시적으로 자산재평가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장부상 조작」에 불과한 자산재평가를 2001년부터 폐지하지만 내년말까지 허용함으로써 거액의 환차손을 재평가차익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9월말 현재 재평가차액 상위 20개사의 총 평가차익은 약 22조원 규모이다.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등으로 상환조건이 변경된 채권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변경된 조건에 따라 채권을 현재가치로 평가해 이를 당기손익에 반영해야 한다.
투자주식에 대한 지분법 평가 의무화도 눈에 띈다. 지분법이란 예를 들어 A기업이 B기업 주식 20%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B기업의 순자산가치가 100이면 A기업이 보유한 B기업 주식에 대한 평가를 주식시장에서의 주가로 하지 않고 순자산가치에 지분율을 곱해 20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B기업이 부실해 순자산가치가 50으로 줄어들면 투자주식 가치도 20에서 10으로 줄게돼 부실계열사를 보유한 기업의 손실이 커지면서 부채비율도 올라간다.
◆금융업 회계처리준칙 제정=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급보증 충당금 제도의 신설이다. 그동안 금융기관들은 엄청난 지급보증 규모와 보증대상회사의 부도로 인한 대지급에도 불구하고 지급보증에 대해서는 충당금을 설정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적립방법은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기준과 유사하게 보증대상채권의 건전도 정도에 따라 보증금액기준 정상 0.5% 요주의 2% 고정 20% 회수의문 75% 추정손실 100%의 충당금을 쌓도록 할 방침이다.
금감위는 이같은 신규 충당금적립으로 3월말 기준 은행권은 약 2조원, 보증보험사들은 약 3,000~5,000억원의 신규 적립재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곧바로 은행과 증권, 보증보험사들의 자기자본 감소, 자산건전성 비율 하락으로 나타난다.
또 주식, 채권등 금융기관 보유유가증권에 대한 전면적인 시가평가제가 도입됨에 따라 시장의 등락에 따른 위험이 고스란히 재무제표에 반영되게 됐다.
증권사들의 경우 그동안 취득원가로 평가해 오던 증시안정기금 출자분을 시가평가함에 따라 10월말 현재 8,589억원 규모인 원금대비 손실분을 99결산에서는 전액 손익에 반영해야 한다.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등으로 채권의 상환조건이 변경된 경우도 현재가치로 평가해 바로 반영해야 한다. 거치기간과 상환기간을 합해 수십년이 보통인 산업합리화관련 여신도 현재가치로 해 반영할 경우 은행권은 추가로 4,900억원 규모를 추가 손실처리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의식·정명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