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운하의 정책비리

국책사업은 대부분 중장기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데다 일단 시작되면 중도에 중단하기도 어려운 사업이다. 잘못 시작했다간 두고두고 국민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끼치게 된다. 그 때문에 경제성과 사업성에 대한 철저한 사전 기초조사와 공정한 평가보고는 국가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를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건설교통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인운하와 관련 세 차례나 평가항목을 바꿔가며 사업성이 있는 것처럼 짜맞추기에 나섰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두 기관은 이 사업의 비용은 축소하고 경제적 효과는 과장했다. 경제성이 있을 때 까지 용역발주를 계속했다니 맞춤용역을 한 셈이다. 매출을 부풀리고 손실을 숨겨 분식회계를 일삼는 부실기업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도로공사가 지난 99년 서울외곽순환도로의 귤현대교를 건설하기에 앞서 다리의 수면위 최소 높이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컨테이너선의 굴뚝과 조타실을 계산에 넣지 않고 5m나 낮게 통보한 사실은 어처구니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경인운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은 물론 관련자들에 대한 문책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착공전 사업이라고 해서 문책을 등한시하면 언제 또다시 평가용역의 왜곡현상이 재발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나 국책연구기관이 사실을 왜곡해 국책사업을 망가뜨린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부실한 타당성 조사를 근거로 국책사업이 진행될 때 갖가지 사고를 유발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예컨대 입지선정 잘못으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항공기 추락사고의 한 원인을 제공했던 아픈 과거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새만금사업 등에서 보듯 정치적 고려로 결정된 국책사업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국력을 소모하고 있음은 눈앞에서 보고 있는 바와 같다. 감사원이 이번에 경인운하 건설의 문제점을 적시한 점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하겠지만 지난 95년 민자유치로 경인운하를 건설한다는 방침이 정해졌고 이미 98년 사업시행자가 결정된 마당에 감사원이 새 정부가 들어선 이제서야 경제성 평가보고의 왜곡을 적발한 것은 너무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우리 사회 전반에는 각종 이익집단의 주장이 난무하고 갖가지 요구가 봇물 터지듯 홍수를 이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울러 정부 내에서도 입장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사안이 하나 둘이 아니다. 정책감사와 회계감사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감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책사업이나 국가정책의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꿸 수 있도록 감사기능을 보다 체계화해야 할 것이다. <이연선기자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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