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6년 동안 공을 들여온 50억달러(약 6조원) 규모의 카자흐스탄 발하슈 석탄화력발전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이 사업에 35억달러를 투입할 국내 대주단이 요구해온 발하슈 발전소의 전력구매 계약에 대한 정부 보증을 카자흐스탄이 최근 최종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대주단은 정부 보증이 없으면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 명확해 삼성물산(000830)이 그간 2억달러 이상 투입하며 한·카자흐 간 대표적 경협 사업으로 꼽혀온 발하슈 프로젝트는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4일 삼성물산에 따르면 카자흐 정부는 최근 발하슈 프로젝트 대주단인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사업시행사인 삼성물산과 한국전력(015760) 컨소시엄에 정부 차원의 보증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최종 통보했다. 카자흐 정부는 공문에서 총리령 또는 사업지원서 형태로 발하슈 프로젝트를 지원할 수 있으나 정부가 직접 나서 보증할 수는 없다고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하슈 사업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발전소 건설 후 투자회수 기간이 20년 이상으로 긴 반면 현지 불안정성은 높아 카자흐 정부의 보증이 꼭 있어야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35억달러의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며 "총리령 등은 구속력이 약해 받아들일 수 없어 사업 진행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발하슈 프로젝트는 지난 2009년 삼성물산과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카자흐에서 수주한 최초의 민자발전(IPP) 사업으로 총 사업비는 50억달러다. 삼성물산이 현지 국영 에너지 기업인 삼룩과 50대50 비율로 설립하는 합작사(BTPP)가 15억달러를 부담한다. 오는 2020년까지 발하슈에 카자흐 전체 발전용량의 9%에 이르는 1,320MW급 화력발전소를 지은 후 한전이 삼성물산 지분을 인수해 20년간 운영한다. 발하슈 프로젝트는 이명박 정부가 해외 자원개발을 위해 수주를 적극 지원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6월 카자흐를 방문해 양국 합작사가 발전소 건설 후 20년간 생산한 전기를 현지 국영송전망(KEGOC)에 연간 9억4,000만달러에 공급하도록 하는 계약을 끌어내며 힘을 실은 바 있다.
하지만 카자흐 정부가 끝내 대주단의 보증 요구를 거부하면서 사업 무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주단이 전체 사업비의 70%(35억달러)를 제공하는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금융의 특성상 투자비 회수에 오랜 기간이 소요돼 정부 보증 없이는 자금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주단 구성을 이끌고 있는 한 금융공기업 핵심 관계자는 "카자흐에서 민자발전 사업은 처음이고 현지 신인도 역시 높지 않아 정부 보증이 없으면 대규모 자금 동원이 어렵고 국책 금융기관 한두 곳이 떠안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카자흐 정부는 고유가 시절의 상황을 고집하며 과거 외국 기업들이 유전 및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 등에 정부 측 보증을 요구한 적이 없는 만큼 발하슈 프로젝트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배짱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 등을 앞두고 중앙아시아 지역에 인프라 투자가 늘 것으로 예상돼 카자흐 측이 사업시행자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발하슈 사업을 대통령이 챙겨온 만큼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 보증이 무산된 것은 맞지만 대주단과 사업자가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부터 사업을 개발해온 삼성물산은 2억달러 넘는 손실을 볼 처지여서 카자흐 정부와 대주단 간 협상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금까지 철도 부설 등 현지 사업 추진을 위해 2억달러 이상을 투입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발하슈 사업이 무산된 것은 아니다"라며 "양국 정상이 약속한 사업인 만큼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