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협력업체, 2·3차 업체와 상생 외면… 양극화 심화시켜


정부의 상생협력 드라이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일방적 지원만을 강요하면서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한계 중소기업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이 퇴출되고 우량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시급한데도 정부의 상생협력 강요로 구조조정이 저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기업들이 시혜성 자금지원을 하는 것보다 기술지원이나 교육 등 기술력을 배양시켜주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중소기업들도 기술력을 키우는데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소기업, 무조건 약자인가=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인 소디프신소재의 지난해 1,79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가운데 영업이익은 61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무려 33.9%다. 반도체ㆍLCDㆍ 태양광전지용 특수가스 공급업체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덕분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률(7.07%)과 비교하면 무려 4배 이상이다. 이익률만 놓고 보면 협력업체가 월등한 앞선 셈이다. 소디프신소재 뿐만 아니다. 지난해 동일기연은 24.8%, 우주일렉트로닉스와 코디에스는 각각 23.1%와 20.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물론 이런 우량 중소기업들은 전체 중소기업 중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 상생협력의 대상이 되고 있는 1차 협력업체들은 중소기업 중에서 특A급에 속한다. 이같은 강소기업들은 전체 중소제조업체(약 11만여개) 중 10~2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상생 드라이브를 걸면서 지원 대상을 대기업 협력업체로 정한 것은 오히려 중소기업간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월등히 경영상태가 좋은 대기업 협력업체들에게 상생협력 지원이 집중되는 건 역차별”이라며 “중소기업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지원 강화는 구조조정 저해=강소기업들과는 달리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뚜렷한 기술력이나 마케팅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채 ‘원가 따먹기’식 생산에 매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대기업에 비해 기술력이나 생산성이 크게 떨어져 경쟁력을 높이는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로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생산성(2008년 기준=100)은 영국의 188.4나 미국의 182.0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생산성과 비교하면 3분의1 미만이다. 또 기술수준은 세계 최고 대비 74.6%에 머물러 있고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 중국,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겨우 5위를 차지하고 있는 정도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우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정부의 과도한 보호정책 때문에 한계기업들이 퇴출되는 대신 목숨을 부지하며 전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한계기업수가 크게 늘어났다”며 “효율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한계기업 퇴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무차별적인 상생협력, 즉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원 확대만을 강요하면 시장원리를 훼손해 자원배분의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김 위원은 “대기업이 펀드를 만들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식으로 가면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저해를 받는다”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을 면밀히 파악해 이들 기업에 대한 지원을 전략적이고 선택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생협력 외면하는 중기=대-중소기업간 거래관계보다 중소기업간 거래에서 불공정한 일들이 훨씬 많이 일어나는 점도 문제다. IBK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대기업 1차 협력업체와 2ㆍ3차 협력업체간 영업이익률 차이가 4배 가까이 되는 등 1차 협력업체와 2ㆍ3차 협력업체 간 양극화 추세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정부가 당초 대기업의 어음 관행을 문제 삼았지만 중소기업간의 거래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10대 대기업의 현금성 결제비율은 약 97.7%다. 30대 그룹으로 범위를 넓혀도 84% 수준이다. 반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간 거래에서 어음 결제 비중이 여전히 높고, 납품단가 후려치기도 심하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원자재값 폭등 때문에 대기업의 현금 결제가 강조된 적이 있었지만 1차 협력업체가 2,3차 협력업체들에게 현금결제를 하지 않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전일주 중소기업협력센터 사업팀장은 “대기업이 현금결제를 하더라도 1차 협력업체들이 2,3차 업체들에게 현금결제를 하지 않고 있어 ‘낙수효과’가 끊겼다”며 “대기업에게만 책임을 강요하는 상생협력은 70% 가량의 2,3,4차 업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1차 협력업체들이 대기업의 2,3차 협력업체 지원을 방해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모 대기업의 경우 2, 3차 협력업체들을 승격시켜 1차 협력업체 수를 늘리려는 방안을 추진하자 1차 협력업체들이 모여 반대의견을 모아 전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