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면서 재계와 정치권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4일 정책토론회에서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의미"라며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더라도 국가 권력의 남용을 통제하는 헌법 원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새누리당 기획통인 이혜훈 최고위원은 "시장의 자유란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말할 수 있다"며 "재벌개혁이야말로 경제민주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맞받아쳤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재계와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양측 간 치열한 공방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시장자유에 대한 헌법정신부터 명확히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헌법 119조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한다'고 못박고 있으며 2항에서는 '국가가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항이 기본원칙이라면 2항은 이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무른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마치 경제민주화가 시장경제를 지배하는 것처럼 본말이 전도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책략에 따라 헌법정신을 멋대로 해석하고 있으니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을 법으로 옭아매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연구단체인 경제민주화조찬모임에서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집단소송제도를 확대하고 과징금을 대폭 올리는 방안이 거론됐다고 한다. 여러 선진국에서도 운영되고 있는 리니언시(담합자진신고감면제)까지 수술대에 올리는가 하면 대기업 친인척 회사의 성장률과 수익률을 정기적으로 감시해 공정거래위원회 직권조사를 받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대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열심히 뛰어 수익을 많이 남기면서도 죄인처럼 잔뜩 움츠러들 판국이다.
경제민주화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대기업만 잡아 족치면 경제민주화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정치구호는 크게 잘못됐다. 만약 지금 우리나라가 자유시장 체제에서 국가개입 체제로 이동해야 하는 절실한 상황이라면 헌법개정 같은 국민적 합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