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각계 거목을 만나다

국립현대미술관 '최만린'전
'이브'시리즈 등 200점 선봬

최만린의 1977년작 '아 77-5'

최만린의 1965년작 '이브 65-8'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남북전쟁의 폐허 속에서, 그 죽은 듯한 땅에서 새싹이 움트는 것을 지켜봤다. 좌절 속에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흙에서 생명을 빚어내는 조각가가 되기로 했다. 한국 조각계의 거목이자 살아있는 신화가 된 최만린(79)이다.

8일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 과천관에서 개막한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의 조각부문 첫 전시 '최만린'전에서 휠체어에 몸을 기댄 그를 만났다.

최만린은 데뷔부터 진기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서 입선하며 미술계에 발을 디뎠다. 나이 제한이 없었던 모양이다.

"경기중 3학년이던 1949년에 '국전'이 처음 생겼죠. 지금은 월북한 박승구라는 미술선생님의 권유로 출품한 게 '입선'을 했지요. 그 바람에 운명이 결정됐나 봅니다."

이후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했고,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국내 최고 대학을 나왔으나 전업작가로는 생계가 어려웠다.

"답답한 마음에 남산 근처를 지나다보니 긴 줄이 늘어서있더군요. 라디오방송사 아나운서를 뽑는 거였는데 또 덜컥 붙어 3년간 아나운서를 했어요."

그는 저음이면서도 또렷한 음성을 갖고 있다. 당시 방송국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여배우 김소원 씨와 사랑에 빠졌고, "가진 게 목소리와 흙 빚는 두 손 뿐"이었지만 결혼을 허락 받았다. 그래서 탤런트 최불암과는 동서지간이다.

전시장은 최만린의 화업(畵業) 여정을 시간순으로 따른다. 초기 대표작 '이브'는 팔다리가 잘린 듯한 거친 표면의 인체상이다. 전쟁통에 가족을 잃었으나 그 폐허에서 찾아낸 생명에의 본능이 오롯이 작품에 담겼다. 6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 조각의 독자적 양식을 찾는 데 몰두했다. 매끄러운 청동의 원 또는 수직선 등으로 표현된 '천지(天地)','일월(日月)'시리즈는 우주섭리를 반영한 우리네 자연관을 보여준다. 이를 발전시켜 쇳물을 방울방울 쌓아올려 만든 '아(雅)'시리즈는 보다 견고해진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평가받는다.

동물의 내장처럼 보이는 '태(胎)'는 원초적 생명력의 절정이다. 형태는 단순하나, 멈춰서서 그 울룩불룩한 표면을 '눈으로' 쓰다듬고 어루만져야 한다. 일렁이는 곡선에서 심장 박동이, 북소리가, 무당의 신들린 춤사위가 느껴질 때까지. 이어 80년대 후반부터 작가는 '비움'의 단계로 접어들어 특히 '제로(0)'시리즈에서는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모든 것을 비우고 버림으로써 또다시 포용할 수 있는 열린 세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서울대 미대 교수 및 학장, 국립현대미술관 관장도 역임한 최만린은 국내 환경조형물 확산에도 기여했다. 그 결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앞이나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앞, 천안 독립기념관과 일산 호수공원 등 곳곳에서 그의 작품과 마주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조각전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표작을 200점이나 선보였다. 7월6일까지.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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