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이 동성애자이었다고?’ 답은 두 가지. 역사적 근거가 없어서 ‘No’. 하지만 극중에서는 ‘Yes’. 조선 10대왕 연산군 시절 궁중 광대들의 애환과 그들을 둘러싼 인간들의 음모와 욕망을 그린 창작 역사극 ‘이’(爾)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爾)는 조선시대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극중에서 연산군이 아끼는 광대 공길을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2000년 첫 공연 이후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연극상ㆍ희곡상ㆍ연기상, 2001년 동아연극상ㆍ작품상ㆍ연기상 등 연극계의 굵직한 상을 휩쓸면서 흥행성과 예술성을 모두 인정받은 그야말로 ‘재미있는 ’ 연극이다. 작품은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엇갈림으로 관객들을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 매력이다. 천민 광대의 신분으로 지금으로 보면 궁중 극장에 해당하는 희락원의 종 4품 관직을 지냈던 궁중 광대 공길과 연산의 연인이었던 질투의 화신 녹수, 죽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채울 수 없는 모성결핍으로 비뚤어졌던 폭군 연산군 등 주인공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여기에 연산과 공길의 관계를 단단하게 묶기 위해 연산군을 동성애자로 슬쩍 바꿨다. 공길과 녹수간에 벌어지는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잇기 위해서다. 연산군이 광대극을 좋아했다는 것도 극중 설정이다. 극중극 형식으로 등장하는 광대극인 ‘소학지희’(笑謔之戱)는 인간들 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웃음으로 해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개그콘서트인 소학지희는 말장난ㆍ성대모사ㆍ흉내내기ㆍ음담패설 등 언어유희로 이루어진 광대극으로 부정부패와 비리를 우회적으로 고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한편, ‘이’는 12월 2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이기도 해 이번 공연기간 중에 연극과 영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18일 연극이 끝난 후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등 영화 ‘왕의 남자’의 출연진과 이남희, 이준기, 강성연 등 연극 ‘이’의 주역배우들이 한자리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내성적이지만 아름다운 광대 ‘공길’이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가면서 변화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연극과 주인공 중 유일하게 허구의 인물인 공길의 친구 ‘장생’의 눈에 비친 세상을 엮은 영화와의 차이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6일부터 2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1544-5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