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전망에 'IMT-2000' 열기시들
시작전부터 실패우려 확산…투자자 주춤
전세계를 단일 통화권으로 연결하고 화상통화, 무선 인터넷, 주문형 비디오(VOD) 등 각종 첨단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사업이 본격 서비스에 나서기도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유럽에서만 약 2,500억달러(300조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될 정도로 투자규모가 엄청난데 비해 그에 걸맞는 사업성과 수익창출 여부에 대해 투자자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면서 회의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차세대 이통사업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통신업자들이 각종 첨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이를 선호할지 여부를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이동전화기로 영화를 보고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화상통화를 이용하고 단순한 문자 위주의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새로 기기를 구입하고 높은 이용요금을 선뜻 지불할 고객이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개인용 컴퓨터(PC)의 보급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개인휴대단말기(PDA)의 판매도 늘고 있다는 점도 이동전화를 통한 무선 인터넷의 확산에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최근 지금까지 유럽과 아시아에서 수많은 무선통신서비스가 공급업체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무선통신업계는 향후 조정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유럽의 통신업계가 무선인터넷 서비스의 미래를 재고하기 시작했으며 유럽이나 아시아보다 이의 보급이 늦은 미국에서는 사태의 추이를 관망한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통신업체들이 조기에 서비스를 실시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투자비조달 문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막대한 투자비를 확보한다고 해도 향후 몇 년간은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 이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초우량기업으로 손꼽혀온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이나 미국 AT&T의 경우 불과 2년만에 부채가 수십배로 늘어난 반면 주가는 곤두박질하고 있다. 또 막대한 부채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이들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에는 미 국채대비 3%포인트 이상의 가산금리가 매겨지고 있다.
과도한 부채문제는 통신서비스 업체들 뿐 아니라 장비 및 부품기업으로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장비를 구매할 때 협력업체들에게 대금을 일부만 지불하고 잔금은 부채로 돌리는 이른바 '벤더 파이낸스(vendor finance)'를 관행으로 여겨왔다. 공급업체들도 자신들이 제공한 장비를 담보로 금융기관들로부터 자본을 손쉽게 조달해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3세대 이동통신 장비의 경우 사업전망이 불투명하고 기술표준이 확실치 않아 장비업체들이 금융기관들로부터 자본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즈 앨런 앤드 해밀턴의 마크 페이지 부사장은 은행이나 채권기관들이 사업전망에 대해 확신을 가질 때까지는 쉽사리 돈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적기에 부품이나 장비를 공급받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난제로 꼽히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등 전세계적으로 거의 동시에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공급부족현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수십년 동안 단일 상품인 음성서비스 판매에만 주력해온 통신기업들이 다양한 부가상품을 개발하고 이를 판매하는데 따른 조직문화의 변화도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시장을 늘리는 데만 주력하면 됐지만 서비스개발과 치밀한 마케팅이 필요한 완전히 새로운 사업방식에 잘 적응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IMT-2000은 국제통신연맹(ITU)이 채택한 표준기술을 이용한 차세대 통신서비스로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음성전화, 인터넷, 무선호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흔히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전화를 제 1세대, 디지털 방식의 셀룰러폰을 제 2세대로 부르고 IMT-2000을 제 3세대 이동통신이라 일컫는다.
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