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안지키는 국회..속끓는 기획처

"헌법은 가끔, 어쩌다가 여건이 되면 지킨다. 안지켜지면.. 별 상관은 안한다. 국회 운영에 관한 내부지침은 칼처럼 지킨다..안지켜지면 난리난다" 오늘날 우리 입법기관인 국회의 현주소다. 2일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헌법에 명기된 처리기한을 계속 못지키고 있다. 96년 이후 지난해까지 이 날짜(12월2일)가 지켜진 해는 대통령선거가 있은 97년과 2002년 딱 두번 뿐이었다. 대선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행사'이므로 국회 일정을 한달쯤 미리 당겨서 모두처리해버리고 정치권은 대선준비에 몰입한다. 이 과정에서 예산안은 얼른 처리되고그 덕분에 헌법에 명시된 기일도 지켜진다. 하지만 대선이 없는 해는 정치권의 싸움에 예산안이 볼모로 잡혀 늘 기일을 어기게 된다. 올해도 헌법에 명시된 이날까지 예산안이 처리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상황이다. 상임위 의견심의, 예결위 조정안 검토, 야당이 제출한 감세법안과 예산삭감안등을 차례로 검토해야 하는데 이제 상임위 소관예산 조정을 하고 있는 상태여서 이대로 가면 정기국회 마감일인 9일까지도 처리가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예산안 심사권한이 국회에 있어 행정부 입장에서 뭐라 말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헌법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도 최근 국회의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예산안의 기일내처리를 당부했다. 변 장관은 기자들에게 "예산안 처리 지연시 발생하는 문제점을 입이 닳도록 얘기하고 다녔지만 의원들은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면서 "헌법에 명시한 것은그만큼 날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변 장관은 최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헌법 기일 안지켜도 된다'는 일부의 태도에 대해 기일 준수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변 장관은 "어떤 이는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안지켜도 되는것이라고 말하는데 헌법에 무슨 처벌조항이 있겠느냐"면서 "이런 말 하는 사람 보면정말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또 준예산 편성이라는 대체조항이 있으므로 늦어져도 괜찮다는 지적에 대해서도"준예산은 국내 어느 누구도 편성해보지 않은 것이며 그 정도 되면 나라는 완전히헌정중단의 상태가 되는 것"이라면서 "국회가 일정을 안지켜서 그런 사태가 오는 것이 납득할 수 있는 일이냐"고 반박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헌법에 처리시한을 명기하지 말던지, 명기했으면 지키던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이 같은 상황이 매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대외적으로정말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헌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국회가 회의 운영에 관한 내부지침은 민망할 정도로 잘 지키는 것으로 전해졌다. 변양균 장관은 최근 국회 예산안 심의 때문에 국회에 자주 나가 하루종일 답변을 하는데 지침상 회의장에서는 물을 마시지 못하게 돼 있어 인간적으로 어려움을겪는다고 토로했다. 또 언제 호출될지 몰라 회의장 관람석에서 '대기'하던 한 고위공무원이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책을 펼쳤다가 국회 경위의 호통을 듣는 바람에 본회의장이잠시 소란스러워진 적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예산안 처리일정을 국회가 자주 어기는 헌법에 넣지 말고 잘 지켜지는 국회 회의 운영지침에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텐데.."하며 자조적인 한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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