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앤 조이] 단둥·고구려 유적

주몽의 거친 숨소리 들리는 듯…

사진으로만 보던 장수왕릉를 실제로 보면 그 거대한 크기에 놀라게 된다.

이곳에선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판 다른 세상이 바라다 보인다. 강의 북쪽인 이곳엔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강 건너 남쪽은 밤이면 전력 공급이 안 돼 암흑 천지가 된다. 그리고 그 강에 걸린 교량은 한국 사람이 절대 넘을 수 없는 다리다. 다른 세상을 강 너머에 두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이 곳은 중국 단둥(丹東). 강 너머 도시는 북의 신의주이며, 두 도시 사이로 도도히 흐르는 강은 압록강이다. 랴오닝(遙寧)성에서 6번째로 큰 도시(인구 260만 명)인 단둥은 외국인에게 그리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의 귀에는 낯설지 않다. 북한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신문과 방송의 기자들이 달려가 강 너머로 망원렌즈를 들이대는 곳이 바로 단둥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단둥이란 도시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들도 “중국 단둥에서, 누굽니다”하는 방송 뉴스 마무리 멘트가 떠오를 지도 모른다. 단둥은 또한 백두산 관광객들이 이동의 중간 거점으로 삼는 도시이기도 해 한국인에게 낯선 곳은 아니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서해로 흐르며, 가장 넓은 곳의 강폭이 2,000m인 압록강은 단둥 관광산업 최대의 자랑거리다. 신의주쪽까지 바짝 다가가 북한 땅을 보는 압록강 유람선이 매일 다니며, 압록강에 건설된 수풍댐 등 4개의 댐 위에서도 어김없이 유람선 관광이 성행한다. 역사 속 ‘위화도 회군’의 위화도는 압록강에 있는 100여 개 섬 중 가장 큰 섬인데, 이곳은 북한군이 상주하고 있어 관광은 할 수 없다. 마치 쌍둥이 다리처럼 보이는 압록강단교(鴨綠江斷橋)와 압록강철교도 대표적인 단둥의 관광 상품이다. 특히 압록강단교는 한국전쟁 때 중국군이 전격 참전을 선언하고 인해전술로 강을 건너자 이에 놀란 미군이 정교한 공대지 폭격술로 끊어버린 다리다. 중국인들은 끊어져 쓸모 없어진 이 다리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며 ‘항미원조전쟁(抗美援助戰爭ㆍ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칭)의 역사 유물’로 기리고 있다. 단교 바로 옆에 건설한 압록강철교는 정식 명칭이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다. 북한과 중국의 우정을 상징하는 다리라는 뜻인데, 이 다리로 기차와 차량이 양국 국경을 오간다. 두 다리는 밤이 되면 불을 밝혀 휘황찬란하게 변한다. 불 밝혀 아름다운 다리를 걷노라면 강 건너 암흑도시가 유난히 쓸쓸해 보여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단둥이 중국 제일의 국경 도시를 자처하는 이유는 북한과의 무역이 성행해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단둥은 북한의 1차 상품 또는 원재료를 수입하고, 북한은 중국의 공산품을 수입하는데 평양의 신흥 부자들은 대부분 단둥과의 국경 무역을 통해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라고 한다. 단둥에 간 사람 중 고구려 유적을 보러 인근 도시에 다녀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위기감, MBC TV 드라마 ‘주몽’ 선풍 등으로 인해 고구려 역사에 대한 한국 사람의 관심이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둥을 거점 삼아 다녀올 수 있는 고구려 역사 유적은 환인(桓人) 지역에 있는 오녀산성과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 등인데, 상당한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단둥에서 출발해 버스 이동 시간만 5시간 이상 씩이다. “중국의 소도시들을 관광하는 과정은 30%가 괴로움, 40%가 지루함, 나머지 30%가 즐거움”이라는 현지인들의 말이 실감날 만큼 힘든 여정이다. 환인에 있는 오녀산성은 쫓기던 주몽이 강을 건너 도읍을 정한 산이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이라 천연의 요새이며 정상에는 당시 쌓았던 성벽이 잘 보존돼 있다. 지금의 지안은 기원전 37년 고구려가 도읍을 옮긴 곳이다. 이 곳에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비가 있는데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이 유적들을 실제로 보면 그 크기의 거대함에 우선 놀라게 된다. 장수왕릉 근처에 있는 귀족 석실묘인 오호묘에서는 고구려 벽화를 볼 수 있다. 벽화를 보노라면 그 그림들의 창의력에 누구라도 놀라게 된다. 중국남방항공의 비행기를 빌려 인천-단둥 노선을 취항하는 단둥항공을 이용하면 단둥까지는 한 시간 안팎에 갈 수 있다. 요즘 단둥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주체는 한국 기업들이다. “아마도 남북 평화 공존의 미래를 기대한 선택이 아니겠느냐”는 게 단둥시인민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