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는 아직도 미국경제라는 기관차의 저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일본이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미국의 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9ㆍ11 테러는 미국경제의 앞날에 대해 깊은 불안감을 증폭시켰지만 올 1ㆍ4분기에 미 경제는 강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이 같은 성장세는 뉴욕 증시의 트레이더들을 놀라게 했으며 다우존스지수는 테러 이전 수준으로까지 회복됐다. 또 이코노미스트들은 지난해 3월 시작된 경기침체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발표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민주혁명이 비교적 순탄한 과정을 거친 관계로 '벨벳(Velvet) 혁명'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미 경제의 버블 후 경기침체(post-bubble recession)도 '벨벳 침체'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같은 점에서 유럽ㆍ남미ㆍ아시아의 2002~2003년 경기전망에는 낙관적인 전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유럽경제의 회복 분위기로 유로화가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 엔화도 점차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본 정책 당국자들은 이러한 엔화 강세를 염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엔화 강세가 자칫 일본기업의 수출경쟁력을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경제의 강한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지난 4, 5, 6월 3개월 동안 일견 미 경제의 허약함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월가는 뉴욕 증시를 다시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했으며 주요 주가지수들은 낙폭을 확대시켜나갔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났을까.
첫째, 향후 기업 순익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잇따라 터진 기업의 회계 부정이다. 엔론사태에서 볼 수 있듯 기업의 최고경영진들이 스톡옵션으로 막대한 돈을 챙길 때 중하위층의 직원들은 파산의 위험에 직면했다.
메릴린치와 JP모건 등의 증권 브로커들은 아직도 엔론과 제록스의 주가가 곧 회복될 것이라는 달콤한 이야기를 고객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증권회사들은 파산 직전에 있는 회사의 거짓 기업보고서로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팔아 치움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이러한 속임수가 난무할 때 명망 높던 회계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회계사들은 한 때 그들의 회계가 경제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존경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앤더슨을 비롯한 5대 회계법인 모두가 독립 회계법인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기업에 종속된 회계사무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1,000만달러의 회계 용역비와 1억달러의 컨설팅 용역비를 벌 수 있을 때 회계법인들은 당연히 컨설팅을 수주하기 위해 기업의 분식회계를 눈감아버릴 개연성이 높다. 때문에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회계업무와 컨설팅 업무의 겸업이 금지됐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출범 후 그러한 규제가 풀렸다. 회계법인들이 양당에 치열한 로비를 펼쳤기 때문이다.
회계사들이 하루 아침에 그처럼 멍청해지고 사리 분별력을 잃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또한 하루 아침에 회계 장부를 조작, 빚을 감추고 이익을 부풀릴 만큼 탐욕스럽게 변한 건 아니다.
일부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급투쟁 와중에서 나타난 허술한 시장경제시스템을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은 단순하고 병적인 것이라고 꼬집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유권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과 그들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공황 시절의 아픈 기억이 점차 사라지면서 유권자들은 남을 배려하는 이타심을 점차 버리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점진적이지만 견고한 미 경제의 회복세는 시장경제시스템의 역할, 거시적 프로그램이나 규제시스템에 대한 공적 정책, 그리고 불평등 개선을 위한 금융화의 정도 등에 대한 논쟁에 구애받지 않게 하고 있다.
2002년 중반으로 들어섬에 따라 여러 통계상의 증거들은 미 경제가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질 가능성은 낮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 2.5~3%의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이 수치는 95~2000년 미 경제 버블 시기 때보다는 훨씬 낮은 폭이다. 하지만 이곳 미국 내부에서 보는 전반적인 경제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다.
또 유럽ㆍ아시아 경제 역시 이러한 미 경제의 회복 전망에 힘입어 착실하게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폴 새뮤얼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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