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김헌수 아시아드CC 사장

사장도 일꾼… 회원 골프백도 직접 내려드려요
매일 아침 5시30분 출근 솔선수범 코스부터 사우나시설까지 뜯어고쳐 서울경제 여자오픈 유치 흥행 대박
불황 속 회원권도 2,000만원 올라 아시아드 르네상스 열며 승승장구 2년내 국내 10대 골프장으로 도약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위치한 아시아드CC. 부산시가 최대주주인 이 골프장이 시끄러워진 것은 올 7월부터였다. 지난 2002년 개장 후 이른바 낙하산 인사의 정거장쯤으로 여겨져오던 사장 자리에 민간 전문경영인 김헌수(61ㆍ사진)씨가 앉으면서부터다. 김씨는 현황 파악을 마치자마자 코스와 그린부터 로커와 사우나에 이르기까지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시아드CC는 개장 초기만 하더라도 부산아시안게임 대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업고 명문 이미지를 쌓아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저 그런 골프장 중 하나로 전락하고 있었다. 보신주의ㆍ복지부동으로 대표되는 문화가 뿌리내린 탓이었다. 급기야 지역민들에게서조차 외면 받기에 이르렀던 아시아드CC는 그러나 김 사장 부임 뒤부터 맥박을 되찾았다. 아시아드CC 회원권은 김 사장이 컨트롤타워에 앉은 뒤 2,000만원이 올라 2억2,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골프장 업계 전반에 스며든 심각한 불황 속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만한 수치다.

'골프장 경영의 귀재' '미다스의 손' '아이디어 뱅크' 등 별명도 여럿인 김 사장은 사장으로서 맡는 5번째 골프장인 아시아드CC에서 5연타석 홈런을 치고 있다. 특히 골프장 업계에 발을 디딘 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프로 대회를 유치한 데 이어 예상을 넘어선 '흥행 대박'으로 또 한 줄의 귀중한 경력을 추가하게 됐다. 4일 아시아드CC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서울경제 여자오픈에는 사흘간 1만5,000여명의 갤러리가 다녀가 KLPGA 투어 사상 최다 갤러리 신기록을 세웠다. 그 결과 한산하던 아시아드CC는 대회 유치 효과로 요즘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주말 그린피가 21만5,000원으로 영호남 지역 최고가를 고수하고 있음에도 '검증된 코스'를 경험하고자 하는 골퍼들이 줄을 잇고 있다. 바야흐로 '아시아드 르네상스'를 맞은 것이다.

김 사장은 잠들어 있던 아시아드CC를 깨우기 위해 '잠을 포기했다'고 할 정도로 뛰고 있다. 새벽4시30분에 일어나 5시30분 출근 원칙을 지켰다. 회원들의 골프백도 직접 차에서 내려줬다. 새벽출근은 김 사장이 '보병'이라고 표현한 진행원(캐디)들에게 '사장님도 같이 고생한다'는 인상을 심어줬고 회원 봉사는 김 사장이 처음 아시아드CC에 왔을 때 느꼈던 경영진과 회원들 간 불통을 해소하기에 그만한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어요. 이 골프장의 성격상 대부분의 직원들이 타성에 젖어 있었죠. 바꾸려면 내가 먼저 뛰는 수밖에 없었어요." 김 사장은 직원들의 명찰도 통일했다. 진행원부터 사장까지 디자인을 똑같이 맞췄다. 부서와 직급은 생략했고 오로지 이름과 영문 성만이 있도록 했다. 김 사장은 "손님들이 불편한 점이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다른 부서라서 잘 모르겠다는 말을 고객들은 용납 못한다"며 "나도 이곳에 일꾼으로 왔다는 생각이다. 사장이라고 해서 목에 힘주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골프장의 오랜 회원 중 한 명은 "그동안 사장들을 여럿 봐왔지만 회원들에게 얼굴을 비친 사람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아예 지난달 중순 '회원의 날' 행사를 열어 장터국밥과 돼지목살 등으로 지역색에 어울리는 잔치를 베풀었고 서울경제 여자오픈 기간에는 따로 회원 전용 부스를 만들어 음료와 잔치국수 무한 제공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보통 골프장 회원들은 대회 유치에 부정적이지만 이 골프장 회원들은 대회 기간 자원봉사단을 꾸리는 등 남다른 충성심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사실 피곤한 사장이다. '첫 팀과 마지막 팀 잘 모시기'를 원칙으로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하고 저녁 별을 봐야 퇴근하니 이에 발맞춰야 하는 직원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하지만 직원들의 얼굴에서 생기가 가시지 않는 것은 정당한 요구와 적절한 보상 때문이다. 아시아드CC에서는 200여명에 이르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현재 독감예방접종을 실시 중이다. 대회의 성공적 마무리에 대한 포상으로 어묵 선물세트와 제주도 1박2일 여행도 준비했다.

김 사장은 "대회 기간 다같이 고생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독감의 경우는 병원에 가서 맞으라고 하면 귀찮아서 안 가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 회원들의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아시아드CC에는 그 흔한 고객 응대 서비스 매뉴얼이 없다. '돈 아깝다는 소리는 안 듣게 하라' '다른 골프장에 가서도 우리 골프장을 칭찬하게 하라'는 원칙이 있을 뿐이다. 매뉴얼에 얽매인 서비스는 기계적이 돼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서비스라는 것은 돈 아깝다는 생각을 안 들게 하는 게 사실 전부입니다. 다만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라면과 곰탕으로 구분하라는 얘기는 합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과 차근히 시간을 갖고 할 것을 잘 판단해야 한다는 거죠."

불과 4개월 만에 아시아드CC를 지역 명문으로 부활시킨 김 사장은 지금도 눈이 초롱초롱하다. 또 다른 봉우리를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2년 내에 아시아드CC를 전국 10대 골프장에 진입시키겠습니다. 1년 365일이 축제인 서비스 천국으로 만들면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리지 않겠어요? 두고 보세요."

● 김헌수 사장은



▦1951년 경남 의령 ▦1971년 마산상고 졸업 ▦1979년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1970년 삼성그룹(제일모직) 입사 ▦1982년 안양베네스트GC 총무영업팀장 ▦1988년 동래베네스트GC 지배인 ▦1994년 경기CC 상무-전무 ▦1999년 서원밸리GC 사장 ▦2001년 중국 칭다오 제네시스GC 사장 ▦2003년 전남 순천 파인힐스CC 사장 ▦2009년 경남 고성 노벨CC 사장 ▦2011년 골프산업대상 수상(대한골프전문인협회) ▦2012년~ 부산 아시아드CC 사장


■ 김사장은 아이디어맨
그린피 차등제부터 군고구마서비스까지 무려 200건 육박


악천후시 그린피 차등제와 골프 코스를 지역민에게 전면 개방하는 그린 콘서트부터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에 추억의 군고구마 서비스까지. 김헌수 아시아드CC 사장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무려 200건에 육박한다. 지난 1982년 삼성 계열의 안양 베네스트GC에 총무과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골프장 업계에 발을 담그게 된 김 사장은 30년간 8곳의 골프장을 돌며 가는 곳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김 사장이 처음 사장 직함을 달고 경영에 나선 파주 서원밸리GC는 전국 10대 명문 골프장으로 거듭났고 순천의 파인힐스CC는 2003년 당시 지방 최초로 회원권 억대 시대를 열어젖혔다. 파인힐스에서 7년간 일한 뒤 자리를 옮길 때에는 1억원의 거액 보너스를 받기도 했다. 골프장 사장은 1년에 많게는 전국 골프장의 3분의1이 물갈이되는 자리. 업계에서 여전히 '스카우트 1순위'인 김 사장의 장기집권은 그래서 더 두드러진다.

김 사장의 무기는 발과 머리다. 그는 "요즘 말로 스펙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새벽부터 코스는 물론 클럽하우스 화장실까지 골프장 곳곳을 누비며 회원들의 의견을 직접 경청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아이디어들로 혁신을 일으켰다. 그 결과 전국의 대학과 기관에서 강연 요청이 밀려들었고 지난해에는 서비스 차별화에 대한 공로로 골프산업대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신체 나이는 예순을 넘었지만 에너지는 웬만한 20대보다도 넘쳐나 보인다. 이제 막 대회를 끝내고도 벌써부터 타 지역 골프장들과의 대대적인 제휴 작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청년 김헌수'의 20대 같은 에너지와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는 남다른 '휴(休)테크'에서 나온다. 그는 휴일인 월요일에 더 바쁘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관람으로 영감을 찾고 테니스ㆍ스킨스쿠버ㆍ암벽등반 등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특히 국내에서 공연된 뮤지컬과 오페라는 한 작품도 빼놓지 않고 전부 관람했다. 독서의 폭도 '파우스트' '자본론' '군주론' 등 고전에서부터 최근의 베스트셀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처럼 한 가지 여가활동에 전념하기보다 다양한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결국 고객 서비스와 연결된다. "골프장에 오는 손님들의 유형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에요. 소통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은퇴 이후 계획은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질주하는 것. 하지만 아직 은퇴는 먼 얘기다. "30년 전 낯설기만 한 골프장에 발령이 났을 때는 고향(경남 의령)으로 도망가 숨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천직이었나 봐요. 적어도 70대까지는 문제없습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