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정기국회에 제출할 내년도 정부 예산규모(일반회계 기준)가 117조5,000억원으로 확정됐다. 국민들의 호주머니가 쪼그라들고 있는 가운데 정부 예산도 전년대비(추경포함) 2.1%증가에 그쳤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개인살림은 물론 나라 살림살이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어 올해 2%대의 성장률이 전망되는가 하면, 청년실업은 만성화·누적되고 있고, 두려움을 모르고 줄달음쳐 온 한국경제의 기(氣)를 찾을 곳은 없다. 최근 우리경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분명 총체적인 경제위기 국면인데도 위기에 대한 사회적 체감도는 지나치리 만큼 낮다.
정부예산은 제한된 자원을 국가발전 목표에 집중시키는 경제운용의 기본 틀이다. 2004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사회복지비, 국방비, 과학기술비가 전년대비 8%이상 증가한 반면, 산업·중소기업비, 사회간접자본비는 오히려 감소됐다. 게다가 내년도 재정에서 부담을 하기로 되어 있던 공적자금 상환 2조원은 예산에 반영되지도 못한 채 미래부담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지난해 정부에서 발의해 국회에서 통과된 공적자금 상환의 대국민 약속이 첫 단추부터 빗나가고 만 것이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 일반회계 예산안을 외형상 균형예산으로 편성하고 있다. 그러나, 저성장과 소득감소에 따른 세수입 축소가 예상되는 만큼 정부지출 감축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예산적자 가능성이 현실화될 것이다. 우선 금년도 남은 예산운용에서 수해복구 관련 추경예산 지출을 포함시키면 금년 예산의 균형기반은 적자예산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 나아가서 금년도 두 차례의 추경예산액을 합한 일반회계는 이미 내년도 편성된 예산액을 상회하는 규모이다. 이것이 바로 내년도 예산액 규모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금년도와 내년도 예산은 외형적으로 균형예산의 우산을 쓰고 있으나, 실질적인 재정운용에 있어서는 적자예산으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 국회에 제출할 정부 예산안이 정기국회에서 확정되기까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안들을 신중하게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첫째로 정부 예산운용의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 첫 단계로 예산회계의 투명성과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 스스로 경상비를 절감하고 성과주의 예산운용의 원칙을 실천해가야 할 것이다. 특히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국책과제에 대한 사업성과와 파급효과를 정치적 논리가 아닌 철저한 경제적 원칙에서 재점검해야 한다.
둘째로 예산운용의 시계(視界)가 지나치게 단견(短見)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국가예산은 경제상황을 사후적이고 피동적으로 반영하는데 머무르지 말고, 적어도 중기적으로 국가경제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단견에 흘러 내년도 예산을 무리하게 균형예산의 틀 속에 맞추다 보니 성장동력을 회생시킬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셋째로 예산편성이 성장보다는 복지, 경쟁력보다는 형평성에 치우쳐 있다. 심화되고 있는 분배악화와 지역간 격차를 줄이는 것이 사회통합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돈을 퍼 넣는다고 해서 분배구조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분배구조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청년실업과 저소득층을 흡수할 일자리 창출과 성장잠재력 확충에 자원 배분의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본다. 내년도 예산에서 예컨대 사회복지비는 10조원이나 증가된 데 비하여, 과학기술 투자의 증가는 4,500억, 그것도 미래 첨단분야인 10대 전략산업에는 3,000억 증가에 그쳤다. 정부가 정작 주도해야 할 사회간접자본과 중소기업 지원은 오히려 감소되고 말았다.
경제가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고, 사회적인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현실일수록 국가예산이 중심을 잡는 시계추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투명한 예산, 국가발전의 중장기 전략이 체화되어 있는 자원배분, 그리고 국가가 해야 할 영역과 하지 말아야 할 영역을 차별화한 예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기국회에서 재조명되길 바란다.
기로에 서 있는 우리경제의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위기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 있다. 내년도 예산이 범국민적인 위기극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예산심의와 예산조정이 이루어지길 촉구하는 바이다.
<김준영(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