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화 기술력 넘버원" 세계 인정
한때 비웃음 있었지만 모두 따라와
아이스락창 등 글로벌 트렌드 선도
지구촌 1% 발만 잡아도 세계 정복
내년엔 최초 성인병 예방화 선뵐 것
케냐의 마사이족에게 영감을 받아 개발한 워킹화로 스위스 건강 슈즈 MBT를 2000년대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기업. 글로벌 순위 100위의 영국 등산화 하이텍을 한때 글로벌 2위로 만들고 과거 프리미엄 아웃도어 살로몬 등산화의 전 세계 유일한 생산공장이던 기업. 신개념 인라인스케이트·하키부츠·스키부츠 등 각종 특수화로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날린 기업.
그동안 남 좋은 일만 시키며 '세계 최초' '국내 유일'의 기술신화를 창조해온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 트렉스타 이야기다. 지난 3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본사에서 만난 권동칠(사진) 트렉스타 대표는 "그동안 글로벌 슈즈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로서 이들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지만 결국 내 브랜드가 아니면 떠나갔다"면서 "지난 2008년부터 모든 OEM 사업을 정리했고 이제는 자체 브랜드인 트렉스타(1994년 론칭)로 글로벌 슈즈 시장을 평정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비상을 꿈꾸는 권 대표의 신발 인생은 1981년 12월에 시작됐다. 졸업을 앞둔 4학년 말 그는 일하고 싶어 몸살을 앓던 중 하이텍·르꼬끄·아디다스·뉴발란스·풋조이 등의 OEM 회사 '세원'에 입사했다. 졸업 후 바로 대기업으로 옮기려던 마음을 접고 권 대표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열의를 다한 끝에 2년반 만에 영업책임자가 됐고 능력을 인정받아 6년반 만에 글로벌영업 수장이 됐다. 신발제조 노하우를 확보한 그는 1998년 내 사업을 위해 회사를 나와 특수화 제조사업에 뛰어들었다.
"자전거신발·스키화·등산화 등 특수화를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회사를 만들려고 했죠. 소재는 혁신적으로, 디자인은 특별함을 추구했습니다. 원래 버선이 들어가 있던 스노보드신발에 고어텍스 소재를 처음 적용해 방수가 되게 했고요. 인라인스케이트도 처음에는 스키부츠처럼 플라스틱에 바퀴가 달려 있던 것을 경등산화를 접목해 오늘날의 인라인스케이트 형태로 처음 만들어 세계 시장의 35%를 점유했죠. 캘거리올림픽 때 독일 스피드스케이트 대표팀이 우리 스케이트를 신고 우승했고 살로몬의 시티트래킹화도 우리가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납품했습니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트렉스타는 세계적으로 특수화를 제일 잘 만드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었죠. 하지만 내 자식 같은 우리 브랜드가 필요했어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사람을 위한 신발을 만들고 싶습니다. 전 세계 시장 1%만 잡아도 충분합니다."
트렉스타는 기술력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이는 권 대표의 남다른 신발 철학 덕분이다. 원래 신발이란 인류가 발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10만년 동안 지위·직분을 나타내는 도구였다. 로마의 경우 직업에 따라 신발 색이 달랐는데 당시 조각상을 보면 노예는 맨발이었다. 최근 200년 동안은 패션 아이템으로 발전돼왔다. 그러다 보니 발을 둘러싼 질병이 많아져 이제 신발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찾아야 한다는 게 권 대표의 지론이다. "'신발은 발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업했습니다. 정말 기능적인 좋은 신발을 만들어 인류의 평균 수명을 늘려보자는 마음에서지요. 발은 '제2의 심장'이잖아요. 따라서 발이 편해야 건강해지는 거 아니겠어요. 발만 따뜻해도 잠을 잘 이루죠. 발에 상처가 나면 다른 곳보다 더 고통을 느끼잖아요." 예부터 근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불편한 신발을 신게 하라고 했다. 모든 신경이 여기에 집중돼 근심을 잊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발 철학으로 탄생한 작품답게 트렉스타 신제품은 모두 혁신을 이뤘다. 다른 브랜드들이 간단한 디자인 교체로 신제품으로 내놓는 것과 달리 기술혁신으로 인류건강에 기여하는 제품에 대해서만 트렉스타는 신제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요즘 가벼운 등산화의 시초도 트렉스타다. 1994년 한국의 등산화라고는 레드페이스와 K2밖에 없던 시절, 모두 통가죽이고 바닥에 두꺼운 창이 있는 투박하고 무거운 등산화뿐이었다. 그 무렵 트렉스타는 운동화를 접목한 등산화를 선보였다. 권 대표는 "높은 산에 오르려면 발이 편하고 가벼워야 했는데 그때는 산에 한번 갔다 오면 발이 까졌다"면서 "중등산화의 장점에다 나이키 운동화를 접목해 만들었는데 모두 비웃었다. 등산화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무료로 신고 올라갔다 오게 해 입소문이 나자 레드페이스와 K2가 뒤따라 바꾸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혁신 릴레이는 계속됐다. 동네 산 전용 트레킹화에 처음으로 고어텍스를 적용해 가벼운 등산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10년 전 미국 보아사에 직접 제안해 다이얼을 돌려 손으로 끊을 묶지 않고 조절하는 기능인 '보아다이얼'을 4년에 걸쳐 개발하고 등산화에 적용한 것도 권 대표다. 그는 "1년간 보아를 장착한 신발을 신고 다니며 편의성에 대해 우리 직원들을 설득하느라 힘들었다"며 "3년간 보아다이얼을 독점 판매했는데 지금은 다른 브랜드도 이 기술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트렉스타 신발 판매의 30%가 보아다이얼 제품으로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판매가 늘었다.
트렉스타는 신발창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겨울철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고무로 된 '아이스락 바닥창'을 개발해 전 세계 60개 신발 브랜드에 납품하고 있다. 또 자동차 서스펜션과 같은 기능을 신발에 적용한 혁신적인 창 'ist'도 독보적이다. 이 시스템은 독립적으로 상하로 움직이게 하는 센서가 있어 바닥창 조각이 지면이 높으면 안으로 들어가고 낮으면 평행을 유지하며 미끄럼 방지 기능을 갖췄다. 사람의 발 모양을 재현해 울퉁불퉁한 족형인 '네스핏'이라는 바닥 기술은 트렉스타가 60개국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권 대표는 귀띔했다.
얼마 전에는 손을 대지 않고 신는 '핸즈프리' 신발을 내놓아 "역시 권 대표"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 제품은 권 대표의 아내가 항상 손을 대지 않고 신발을 신고 벗으면 좋겠다고 말한 데서 착안했다. 손댈 필요없이 연속 발동작만으로 재빠르고 신고 벗을 수 있다. 그는 "핸드폰과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엄지족, 양손에 짐을 들거나 아이들을 안아야 하는 주부들이 편하게 신을 수 있다"며 "실내에 들어갈 때 대부분 신발을 벗게 돼 있는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에 제격"이라고 말했다. 이 핸즈프리 슈즈는 내년 3월부터 전 세계 60개국에서 판매된다. 토종 아웃도어 슈즈 수출기업은 트렉스타가 유일하다. 권 대표는 "중국과 일본은 편의성 때문에 트렉스타를 좋아하지만 미국·스페인·스웨덴 등 서양국가는 '펀(fun)'하다는 이유로 찾는다"며 "해외에서는 트렉스타 신발이 노스페이스보다 비싸고 유통매장도 가장 핫하고 좋은 곳에 들어갈 정도로 명성이 높다"고 전했다.
권 대표는 최근 아웃도어 시장이 포화 상태를 맞으며 침체기에 들어선 아웃도어 브랜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트렉스타가 매년 전 세계 아웃도어 전시회에 참여하다 보니 세계적인 브랜드를 많이 접합니다. 그런데 아웃도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헤리티지 부재의 브랜드들이 한국에 들어와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워요. 광고와 홍보에만 집중하는 브랜드가 많죠. 브랜드가 건실하게 지속 성장하려면 기술개발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국처럼 자기 집에서 30분 안에 등산로에 접근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죠. 이런 좋은 시장환경에서 50~60대는 등산을 제외하고는 딱히 즐길 만한 취미생활이 없습니다. 소비자를 위해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해야지, 디자인·색상에만 신경을 쓰고 광고와 홍보로 도배하면 아웃도어는 스포츠와 캐주얼·골프의류와 차별화는커녕 외면당하게 되죠. 그러면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됩니다."
트렉스타의 '혁신의 결정체' 하이브리드 슈즈 행진은 끝이 없다. 트렉스타는 한의학연구원·KAIST와 함께 최근 1차로 치매예방 신발 개발을 마쳤다. 복숭아뼈 밑 경혈을 자극하면 혈류가 개선돼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과학이 적용됐다. 이 제품은 국위선양 브랜드로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2억원가량의 해외 마케팅 비용을 얻어냈다. 한국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정부 지원 아래 맞춤형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칼발인 외국인과 달리 마당발이 많은 한국인의 족형에 맞게 제작한다는 취지다. 현재 한국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들은 외국인 발에 맞춰 디자인된 아디다스화를 신고 있다. 트렉스타가 보유한 다양한 창 기술을 활용한 암벽화 개발에도 착수했다.
"내년 2월1일에는 세계 최초로 발에 열이 많은 사람을 겨냥한 건강화(가칭 '서라운드')도 내놓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높지요. 발도 시원하게 하고 쿠션을 장착해 키도 커 보이게 하는 신개념 하이브리드화로 전 세계 니치 시장을 공략할 방침입니다. 다 같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데 동반자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독창적 아이디어 원천은 독서" 매월 전직원에 책 선물 "회사를 설립하고 조금 지난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좋은 내용을 직원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바로 다음날 직원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매달 전 직원에게 책을 선물하는 트렉스타만의 문화가 정립됐어요."전 세계 시장에서 독창적인 기술력을 인정받는 트렉스타에는 26년간 이어온 남다른 문화가 있다. 권동칠 대표가 매달 자신이 읽은 책 가운데 한 권을 선정해 전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권 대표는 독서광이다. 출장일정이 많은 그는 항상 가방에 책 2~3권을 넣고 다니며 이동하는 시간 틈틈이 책을 읽는다. 한 달에 읽는 책이 최소한 7권에 달한다. 매일 밤 30분이라도 책을 읽어야 잠들 수 있을 정도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책에서 얻는 권 대표는 책 선물에만 그치지 않고 독서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 강제성을 부여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선물 받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제출하도록 한 것. 하지 않을 경우 책값을 월급에서 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처음에는 머리말만 보고 적당히 꾸며 형식적인 독후감을 제출하는 직원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차츰 직원들은 최고경영자(CEO)의 책 사랑에 동참하며 현재는 완독률이 90%나 된다. 권 대표는 또 직원들이 책에서 얻은 깨달음을 다른 직원들과 나누면 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배가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책을 권하는 데서 더 나아가 독서내용을 발표하는 자리까지 마련했다. 10년 전부터는 매달 첫째 주 월요일 전체 직원모임 시간에 무작위로 직원을 뽑아 독후감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발표 이후에는 자연스레 직원들 간에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는 분위기가 형성돼 업무에 접목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됐다는 후문이다. 수많은 책 가운데 권 대표가 추천한 책은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다. 기존 누런 소들 가운데 눈에 띄는 보랏빛 소가 되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차별화가 필수라는 내용이 골자다. 주목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 사람들이 흥미진진해하고 소수지만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얼리어댑터들이 사용해 새로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만한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He is… △1955년 경북 예천 △1982년 동아대 경제학과 졸업 △1982~1988년 세원 무역부 △1988년 동호실업(트렉스타 전신) 설립 △1996년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대통령상 수상, 트렉스타 설립 △1997년 금탑산업훈장 수훈 및 5,000만불 수출탑 수상 △2003년 신발CEO포럼 회장 △2009년 부상상공회의소 상공의원 △2010년 베이징 2009 ISPO 차이나 대상 수상 및 대한민국디자인대상 디자인경영 부문 대통령상 수상 △2012년 한국신발산업협회장 △2014년 신발산업협회장 재선임 |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