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기조연설을 기회로 이용해 “자본의 국적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공정한 시각을 가지라”고 말한 대목은 이날 콘퍼런스가 파이낸셜타임스(FT) 주최였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케 했다.
FT는 지난해부터 ‘5%지분 취득 보고의무’와 ‘외국인 이사 수 제한’ ‘헤르메스 사건’ 등에 대해 한국이 외국자본을 차별하고 있다며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을 줄곧 비판해왔다. 즉 윤 위원장이 FT가 마련한 잔치에 그들을 바로잡으려고 했다는 해석이다.
당초 배포된 윤 위원장의 연설문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으로 개도국이 하면 국수주의적이라고 무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찬을 겸한 기조연설에서 윤 위원장은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FT는 지난해 감독당국의 5%룰 규정 강화에 대해 한국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불만을 전달하면서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가 외국계 펀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이라고 표현한 것을 여과없이 전달했다. FT는 또 사설에서 ‘5%룰은 행정적 자극제’ ‘외국인 투자가들이 수익을 극대화하지 않고 주주권리를 행사할 때만 환영받는다’ ‘동북아 금융허브 꿈을 이상하게 실현한다’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금감원 등 감독당국은 이때마다 여타 선진국의 규제를 예로 들면서 ‘이중잣대’라고 FT 보도에 강력 반발하며 정정 보도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날 윤 위원장의 발언은 그동안의 FT 보도 행태에 대한 간접적 항의 표시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