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기업… 불안한 은행] <상> 부실계열사 외면하는 대기업

"母기업 믿다 발등 찍혔는데… 대출 외면하면 눈치" 은행 전전긍긍
"그룹차원서 살리겠다" 각서까지 써놓고 나몰라라
사기업이어 공기업까지 '손실 꼬리 자르기' 확산
5대금융사 상반기 대손충당금 3조… 전년비 18%↑


금융당국이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며 은행들의 일부 대기업에 대한 여신회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과 관련, 금융권은 "보신주의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부실 계열사를 처리하는 대기업 그룹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은행의 여신 관행도 보다 꼼꼼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단호한 모습으로 달라지는 대기업의 행태와 이로 인해 증폭되는 은행권의 불안감 및 여신 패러다임의 변화를 2회에 걸쳐 짚어본다.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믿고 부실 자회사에 지원했던 은행들이 대기업의 꼬리 자르기로 손실을 보는 경우는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1년 LIG건설 사태 이후 대기업 계열이면 쉽게 돈을 빌려주던 관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으나 현실적인 이유 등으로 관행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LIG건설은 대표적인 꼬리 자르기 사례로 꼽힌다. LIG건설은 2011년 3월 채권단과의 논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대규모 기업어음(CP)을 발행해 경영진이 사기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실제 LIG건설의 법정관리로 LIG건설 채무에 대해 LIG그룹이 부담해야 할 금전적 책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일부 채무에 대해 오너 일가가 소유한 LIG손해보험 주식이 담보로 설정돼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자금은 은행 대출로 마련했기 때문이다. LIG건설의 국내 금융회사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약 2,500억원에 달했다.

효성그룹 계열사인 진흥기업도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진흥기업은 2010년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의 재무평가에서 즉시 워크아웃을 받아야 하는 'C'등급 처지에 놓이자 '그룹 차원에서 살리겠다'는 각서까지 제출하며 'B'등급을 받았지만 2012년 2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주채권은행이었던 우리은행은 진흥기업의 갑작스러운 워크아웃으로 잠정영업실적 역시 470억원을 줄여 정정해야 했다. 전년 대비 당기순이익 증가율도 종전 21.06%에서 16.47%로 낮아졌다. 진흥기업의 워크아웃으로 정상 이하 여신이 고정 이하 여신으로 분류돼 충당금을 더 쌓았기 때문이다.

2012년 9월 웅진그룹도 계열사 극동건설의 법정관리행을 선택했다. 극동건설이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단기성 부채)는 9,620억원에 달했다.

통신 공룡 KT가 2014년 3월 3,000억원대 금융대출 사기사건에 연루된 자회사 KT ENS의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꼬리 자르기가 공기업 성격의 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첫 사례가 됐다. KT는 KT ENS의 법정관리로 배상책임 논란에서 벗어나는 대신 은행에 부담을 지웠다. KT ENS의 법정관리로 하나은행 1,624억원을 비롯해 국민은행 297억원, 농협은행 189억원 등을 모두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한 '고정 이하' 채권으로 분류해 대출금의 70~100%를 충당금으로 쌓았다. 신용등급 'A'에 직전 분기 기준 31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KT ENS의 법정관리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대기업의 부실 계열사에 대한 처리 행태가 달라지면서 은행권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대기업의 꼬리 자르기가 점점 잦아지는데다 사기업뿐 아니라 공기업까지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어 은행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포스코플랜텍·하이알, STS반도체통신, 동부메탈 등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믿고 지원했다가 '발등을 찍힌' 경우가 더욱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으로서는 이 같은 처리 방식에 신경이 쓰이면서도 대기업과의 관계를 의식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특정 은행이 대기업의 행태에 불만을 품고 자회사에 대한 여신 지원을 소홀히 할 경우 부실 여신은 막을 수 있지만 모기업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때문이다.

은행의 한 리스크 담당 임원은 "기존에는 대기업 자회사 여신을 제공할 때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을 염두에 뒀지만 이제는 모기업을 믿다가 발등을 찍힌 경우가 많아 대기업 자회사 여신이 오히려 더 불안하다"며 "대기업 부실 자회사 여신지원 징후를 읽고 지원을 끊을 경우 모기업과 은행의 영업적 협력관계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어 이 역시 신경 쓰이는 부분"이라면서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한편 대기업과 계열사의 부실에 따른 5대 금융사의 상반기 충당금 규모도 3조원에 육박한다. KB·신한·우리·하나·농협금융지주의 상반기 충당금 총액은 2조8,993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올 상반기에는 우리은행이 포스코플랜텍과 하이알에 각각 412억원, 206억원, 신한은행도 포스코플랜텍에 756억원의 충당금을 쌓는 등 대기업 부실 자회사에 대한 충당금 적립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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