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증시에서 기술주가 한달여 만에 거의 20%나 폭락하며 지난 2000년 닷컴버블 붕괴사태가 재연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주가급락이 '탄광 속 카나리아가 내는 울음소리' 같은 위험신호라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월가의 대다수는 기술주가 고평가됐지만 일시적 조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8개, 아시아 5개 등 시가총액 200억달러 이상 14개 대형 기술주 주가는 올 2월 말 이후 20% 가까이 빠졌다. 총 1조4,000억달러이던 시가총액은 2,750억달러나 줄었다. 특히 일부 기술주는 2008년 금융위기의 악몽이 떠오를 정도다. 페이스북 주가는 3월 고점에서 22% 하락했고 트위터와 링크드인도 40% 정도 급락했다. 중국 인터넷 1위 기업인 텅쉰과 일본 야후재팬도 각각 20%, 26% 떨어졌다.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등 기술주의 새 성장동력으로 각광 받던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인력관리 프로그램 개발업체인 워크데이와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스플렁크, 보안그룹인 파이어아이 주가는 30~40%나 폭락했다. 이 때문에 막대한 시중 유동성에 힘입어 성장주로 몰렸던 투자가들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손털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GVA리서치의 데이비드 개리티 애널리스트는 "투자가들이 인터넷주 주가가 (실제 수익에 비해) 과대평가된 데 대해 비판적"이라며 "2000년 기술주 붕괴가 재연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성장주로 각광 받던 바이오주에 대한 회의론이 크다. 나스닥바이오지수는 2월 말 이후 17%나 하락했다. 섀퍼스인베스트먼트리서치의 라이언 데트릭 애널리스트는 "바이오주는 버블에 가장 근접한 종목"이라며 "거품은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 지속된다"고 경고했다. 잠시 반등하더라도 언젠가 거품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주는 그동안 주가가 급등할 때도 주가이익증가율(PEG)이 증시 평균치의 3분의1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주가하락은 투기수요 이탈에 따른 일시적 조정으로 2000년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이 아직은 대다수다. 노무라의 에릭 차 애널리스트는 "과거 '닷컴' 이름만 보고 투자할 때와 달리 지금은 장기간의 실적평가 기록이 쌓여 있고 모바일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영역까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미래수익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올랐지만 지금은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텅쉰의 경우 지난해 99억달러의 매출과 25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또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신약도 지난 3년간 연간 최대 32건까지 늘면서 이전 평균치인 24건을 훨씬 웃돌았다.
헐버트파이낸셜다이제스트의 마크 헐버트 창립자는 2000년 당시보다 △기술주의 IPO 숫자가 적고 △배당주 대비 프리미엄이 낮으며 △기술주의 주가 상승률이 낮다는 점 등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거품붕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CNBC는 "바이오 주가 수준이 과도하지만 거품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 중론"이라면서도 "다음 몇주가 거품붕괴냐, 재도약을 위한 일시조정이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