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권이나 5만원권 등 고액권을 발행하자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르면 오는 2008년 말부터는 새로운 고액권 화폐가 등장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고액권 화폐 발행이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의 시대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고액권이 발행되면 부패와 탈세의 수단으로 쓰일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부정적이었지만 세계 10위 규모로 커진 우리나라 경제의 위상을 감안할 때 지금의 1만원권을 최고액 지폐로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런데 고액권 화폐 발행에 앞서 우리가 한 가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신권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고액권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인 만큼 화폐 속의 인물도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나라마다 화폐의 도안으로 인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실제로 세계 주요국의 화폐 도안 소재로 인물 초상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화폐 도안으로 인물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소재에 비해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화폐의 경우 세종대왕(1만원권), 율곡 이이(5,000원권), 퇴계 이황(1,000원권), 충무공 이순신(100원 동전)을 도안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모두 남성이고 시대적으로는 조선시대 인물이며 정치인이나 위인이다.
이 분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전세계를 무대로 급성장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면을 압축적으로 상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어떠한 차별과 편견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하며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제대로 상징하기 위해서는 과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차별 대상이었던 여성을 화폐의 인물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마도 남녀평등과 여성의 사회 진출만큼 역사상 큰 변화도 드물 것이다.
물론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으로 선정해야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정한다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 중에도 훌륭한 인물이 있고, 외국의 경우 영국에서는 모든 지폐에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초상이 새겨져 있으며 일본과 스웨덴ㆍ노르웨이ㆍ덴마크ㆍ뉴질랜드ㆍ멕시코에서도 여성 인물을 넣고 있다.
특히 호주는 남녀평등의 원칙을 따르는 것으로 유명한데 5권종 지폐의 앞ㆍ뒷면 중 한쪽에 남성 인물 초상이 있으면 다른 면에는 여성 인물의 초상을 넣고 있다. 나아가 남녀 문제에 관해 비교적 보수국가로 알려진 스페인에서는 화폐인물의 50%를 여성이 차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화폐 인물로 여성을 선정하는 데 대해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