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간극 좁혀주는 '풍경'
선화랑, 9일부터 한풍렬 개인전
풍경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즐겨 애용하는 소재이다. 해서 풍경화는 지나치게 평범한 틀로 자기를 옭아맬 수 있다. 만약 자신의 평범해지는 것을 꺼리는 작가라면 애써 풍경을 외면할 수 도 있다. 그러나 평범 속에서 비범을 찾아가는 작가라면 바로 그 풍경 한 가운데 시선을 던진다. 한풍렬의 작품세계는 지금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선화랑(02~734-0458)에서 개인전을 갖는 한풍렬은 서양화와 한국화의 만남을 통해 풍경을 새롭게 읽어내고 그리는 작가이다.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한국화로 방향을 돌린 한풍렬은 먹과 한지를 귀하게 여겨 재료로 차용했지만, 물감은 자기만의 것을 고집했다.
그는 바닷가에 찾아가 조개 껍질을 모은다. 오랜 세월 자연 그대로의 풍화작용을 거친 조개 껍질을 잘게 분쇄해서 얻어낸 입자는 캔버스 위에 올려져 강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수묵담채는 조개와의 조우를 통해 밀도있는 응집력을 과시하고, 그 덕분에 작가는 미풍처럼 흩날리는 붓의 터치를 영겁과 만나게 하는 경험을 얻는다.
가만히 스쳐가는 듯한 붓의 움직임이 조개가루의 응집력을 만나 새로운 마찰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의 방법론이 서로를 밀어주는 형국이다.
한풍렬의 작품이 전통을 재인식하고 나아가 동서양 사이에 놓여있는 간극을 훌쩍 뛰어 넘어가 기이하면서도 은근한 색채감을 연출한다.
그가 밟았던 곳, 서울, 파리, 암스테르담, 프라하, 뉴욕 등의 풍경이 이번 전시에 나온다. 노을과 안개, 그리고 새벽 서리와 가로등에 얇게 부서지는 월광의 흔적들이 사람과 나무와 건물 주위를 서성인다.
그가 연출하는 색은 선객의 묵언을 연상시키고, 생을 반추하는 고뇌를 담은 안광을 보여준다. 그가 오랜 기간 찾아낸 재료의 도움도 컸다.
공기와 자연 그리고 인공의 도시가 어우러지는 풍경. 그 속에서 작가는 적요(寂寥)의 미덕과 함께 언제나 새로워지려는 재료적 실험을 함께 올려놓았다.
/이용웅기자 yyong@sed.co.kr입력시간 2000/11/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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