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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전설이다. 불꽃같이 살았고, 그 삶 같은 그림들을 그렸다. 천경자의 대표작 '미인도'에 얽힌 희대의 진위논란이 있다. 유명 작가가 전문 감정단이 만장일치로 그의 '진품'이라고 인정한 작품을 두고 오직 작가만 '내 그림 아니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천 화백이 둘째 딸을 모델로 1977년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발단은 1979년 10·26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산을 압류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미술품이 발견됐다. 어깨에 나비가 앉은 여성 인물화를 두고 당시 전문위원이었던 오광수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천경자의 작품이라 판단했다. 그림은 검찰을 통해 법무부로 넘어가 국가로 환수됐고 절차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 '미인도'라는 제목은 검찰 직원이 압류품 목록을 만들며 임의로 붙였다.
10년 가량 흘러 1991년에 미술관은 문제의 '미인도'를 처음 공개 전시하면서 그 이미지로 아트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천 화백의 지인이 '선생님 작품이 목욕탕에 걸려있더라'고 전했고, 얘기를 들은 천 화백은 '내 그림일 리 없다'며 노발대발했다. 천 화백은 미술관에 "내 그림이 아니다"고 통보했다. 이어 천경자는 공개적으로 이를 주장하며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미술관이 진위감정을 의뢰했다. 국내 유일의 감정협의체인 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2차에 걸친 감정에서 '진품'이라고 결론지었다. 결정적으로 사건 이전인 1990년 1월 출간된 '한국근대회화선집'(금성출판사 펴냄)의 총 27권 중 11권인 '장우성/천경자' 편 104쪽에 해당 작품이 '나비와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것도 증거가 됐다. 화집을 만들 때만 해도 천 화백이 작품을 인정했기에 이미지 사용을 동의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천 화백은 강력하게 위작임을 주장했다. 작품의 진위판단에는 작가의견이 최우선이다. 화랑협회 감정 내부 규정에도 '생존작가이고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 의견에 감정의 우선 순위를 둔다'고 명시돼 있기에 이 사건은 법정까지 갔다. 그러나 법원마저 '판단 불가' 판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천경자를 절필(絶筆)하게 만들었다. 1991년 4월 "붓을 들기 두렵다 …(중략)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 그는 자신의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는 큰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미술계 내부에서는 국사범(國事犯)이 자신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배경을 두고 작가가 큰 부담을 느껴 '가짜'라고 주장한 것이라는 수군거림도 나왔다.